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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숙객 300명 격리 … 흰 천으로 1층 유리창 가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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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엄청난 액수의 투자 계약이 무산될 위기입니다.”

3일 오후 직접 전화 통화한 유지영(57)씨와 홍춘근(63)씨는 “제발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홍콩 완차이 지역에 위치한 메트로파크 호텔에 투숙해 있다가 다른 외국인 투숙객, 호텔 직원 등 300여 명과 함께 1일 오후 7시부터 외부와 격리돼 있다.

신종 플루에 감염된 멕시코인이 투숙한 홍콩 완차이의 메트로파크 호텔이 1일 오후부터 외부와 격리됐다. 3일 홍콩 방역 요원들이 소각할 비품을 들고 호텔 밖으로 나오고 있다. [홍콩 AFP=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이곳에 ‘신종 플루(인플루엔자A/H1N1)’에 감염된 멕시코인 한 명이 투숙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 멕시코인은 중국 상하이(上海)를 경유해 홍콩에 왔다. 그는 갑자기 고열이 있어 병원을 찾았다가 홍콩에선 처음으로 신종 플루 감염 사실이 확인됐다. 그는 현재 격리 치료를 받고 있지만, 홍콩 보건 당국은 호텔 투숙객들이 전염됐을 가능성에 대비해 바이러스 잠복기가 끝나는 1주일 동안 호텔을 폐쇄한 것이다. 유씨·홍씨 이외에 당초 이곳에 투숙한 또 다른 한국인 4명은 호텔이 격리되기 전 시내에 있다가 호텔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중 한 명은 2일 호텔로 자진 복귀했다. 홍콩 주재 총영사관 관계자는 “나머지 3명도 복귀해 전염병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되도록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3일 오전 기자가 이 호텔을 찾았을 때 1층 유리창은 모두 하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투숙객들과 외부인의 접촉이나 대화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주위에는 경찰 20여 명이 마스크를 한 채 경비를 서며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막았다. 호텔 로비에는 방역복을 입은 수십 명의 의료진이 투숙객들을 상대로 체온 체크 등 검사를 하느라 바빴다. 완차이 경찰서의 리 치쿵 경사는 “외국인 투숙객들이 불편하고 힘들겠지만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인 만큼 일주일 동안 참아 주길 바란다. 한국에서도 이 같은 일이 발생하면 똑같은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격리된 투숙객들은 환자 대우(?)를 받고 있다. “2일 오전 1시쯤 홍콩 의료진 서너 명이 방으로 찾아와 호텔 격리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영어를 못한다고 하자 곧바로 통역을 데리고 왔어요. 의료진은 미리 작성된 서류에 사인을 요구하며 예방약을 복용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유씨의 얘기다. 그는 “최근 심장 수술을 받아 건강이 좋지 않아 약을 복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의료진은 곧바로 체온검사를 한 뒤 “아직은 괜찮다”며 방을 나갔다. 의료진은 이날 오전 갑자기 모든 투숙객과 종업원 등 300여 명을 호텔 2층 식당으로 집합시켰다.

홍콩 보건 당국자가 호텔 격리 이유 등을 설명하자 이곳저곳에서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홍씨도 이때 “투숙객들은 마스크 하나에 몸을 지키고 있는데 여러분(보건 당국자)들은 모두 방역복 차림이다. 이곳에 만약 환자가 있다면 투숙객들은 대부분 감염 될 수밖에 없는 상태가 아닌가”라고 따졌다.

격리에 따른 사업상 손해 문제도 거론됐다. 유씨는 “홍콩 내 금융인들과 예정된 대규모 투자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의료진과 함께 약속 장소로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그의 출입을 허용하면 투숙객들의 비슷한 요구를 모두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씨는 자신의 계약 금액은 1억 달러를 넘는다고 주장했다. 홍씨는 “만약 투자 계약이 무산되면 홍콩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호텔 내에서 이동은 자유롭지만 대부분 감염을 우려해 활동은 삼가고 있다. 투숙객들은 불편함을 참고 있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일부 투숙객의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열흘쯤 걸리기 때문이다. 격리 시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 중국은 신종 플루 감염 증상을 보이지 않는 50여 명의 멕시코 국적자에 대해 격리 조치를 취했다고 주중 멕시코 대사관이 3일 밝혔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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