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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외자유치와 국산품 애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닥쳐올 실업.저임금.고물가라는 견디기 힘든 IMF 한파 때문에 벌써부터 온 나라가 쑥대밭이다.

실업자수 1백50만명이라는 어두운 전망 속에서 "네가 아니면 나다" 라는 이 말 한마디가 지금의 우리 인심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우리는 왜 이처럼 벼랑 끝까지 추락해버렸는가.

물론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근원은 역시 좁게는 나, 넓게는 한국만 잘 살면 된다는 극도의 배타적인 이기주의의 틀 속에서 찾아야 할 듯 싶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의 대화 속에는 외국인들을 이웃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토가 만연하기 시작했다.

대화 속에서 외국인들을 표현할 때 비어를 써야만 애국자 같고, 그렇지 않으면 사대주의에 빠져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돼 버렸다.

아울러 국내기업에서 일해야만 애국자고, 외국기업에 종사하면 마치 남 좋은 일 시켜주고 있다는 듯이 바라보게 됐다.

이들 모두 일종의 역사적 콤플렉스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웃을 이웃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IMF 사태 이후 외국에 대한 적대감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현재 우리는 외자유치를 위해 금융개혁, 정리해고제 도입, 주식.채권시장 개방, 적대적 인수.합병 (M&A) 허용 등 적지 않은 부분의 법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묘한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 법이 개정되면 우리 경제가 거덜나고 이 땅은 제국주의의 활극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도 빠뜨리지 않고 소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식사도 한식만 먹고, 음료도 커피 같은 것은 마셔선 안되며, 옷도 우리 기업의, 그것도 국산 상표만 입어야 한다는 풍토가 은연중에 우리를 강하게 짓누르고 있다.

맥도널드의 햄버거를 먹었다해서 친구들에게 핀잔을 당한 한 어린이의 이야기나, 우리 의류업체의 상표가 외국어라 해서 배척당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극도로 경직돼 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우리 물건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팔되 남의 물건은 절대로 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오늘의 우리 논리다.

우리의 이러한 모습은 외국 투자가의 눈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기업의 자율적 성장을 지원하는 정도에 대한 각국의 이미지를 평가한 IMF 순위에서 한국은 말레이시아나 중국보다 낮은 35위에 그쳤다.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외국투자가들이 한국을 아시아에서 가장 까다로운 시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국제적 매너가 좋지 않고, 시장이 폐쇄적이며, 배타적이고,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한국에 대한 공통적 이미지다.

과연 이러한 풍토 아래에서 외국인들이 이 땅에 투자를 할 것인가.

그 대답은 '노' 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그것을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다.

우리 스스로가 외국자본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제도개혁은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치고 말 것이다.

자나 깨나 '인민' '국가' 를 내세우는 사회주의 중국.북한에서도 외자는 대환영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외자에 대해 적지 않은 거부감이 있다.

물론 외자는 약탈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주체적 역량을 가지고 이를 잘만 활용하면 외자는 이 땅에서 우리의 부모.형제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우리 자원을 구매해주며, 수출을 늘려 외화수입도 증가시키고, 그들의 선진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구원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아울러 외자유치를 바라면서 국산품 애용만을 외쳐대는 모순도 이제는 그만하자. 값싸고 양질의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최고지 비싸고 저질이라도 'Made in Korea' 면 된다는 구시대적 사고는 이제 버려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경쟁, 그리고 국제화가 무엇인가를 이제는 깨우쳐야 할 때가 왔다.

이는 기업뿐만 아니라 국민 개개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모든 편협된 사고에서의 탈피를 통해 우리는 이 땅을 선의의 경쟁을 통한 동서의 화합, 남북의 화합, 나아가 인류 모든 민족의 공존공영의 장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박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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