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대 강 살리기, 목적 옳다고 절차 무시하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2호 02면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건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하면 선이고 남들이 하면 악이라는 이분법 말이다. 그러니 목적이 옳으면 수단과 방법은 나 몰라라 했다. 종합부동산세는 원칙에 맞지 않는 세금이었지만 부동산 투기 억제 명분에 가렸다.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역시 해선 안 될 사업이었지만 지역 균형발전이란 목적에 밀렸다. 지난 정부야 그렇다 치자. 이 정부는 그러지 않아야 하는데 왠지 불안하다. 목적이 옳다고 과정과 절차를 무시하려 드는 행태는 지난 정부를 판박이 한 듯 빼닮았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며칠 전 정부는 4대 강 살리기 계획을 내놓았다. 한강과 낙동강·금강·영산강에 보를 설치해 물도 확보하고 홍수도 사전에 예방하겠다는 내용이다. 취지야 나무랄 데 없다. 만성적인 물 부족을 해결한다는 것 아닌가. 홍수까지 예방하고, 강 주위로 1400여㎞의 자전거길을 조성해 전국을 여행할 수도 있단다. 강에는 유람선을 띄운다 하고, 농림수산식품부는 금수강촌(錦繡江村) 비전도 세웠다.

하지만 4대 강 살리기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이 사업 때문에 정부는 큰 무리수를 뒀기 때문이다. 본래 큰돈이 들어가는 국책사업은 예비 타당성 조사란 걸 해야 한다. 경제성이 있는지,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인지 따져야 한다. 정부가 펑펑 돈 쓰는 걸 막기 위해서다. 나라에 별 보탬이 안 되는 일에 정부와 정치권이 돈을 탕진하는 걸 너무나 많이 봐 왔다. 최소한의 견제장치가 있어야 국민의 세금을 줄일 수 있다는 취지다. 그래서 1999년 명문화된 게 바로 예비 타당성 조사다. 돈이 500억원 이상 들어가는 국책사업은 반드시 이 조사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한 달여 전 법을 뜯어고쳤다. 정확히는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바꿨다. 그러면서 4대 강 살리기는 이 조사를 받지 않도록 만들었다. 조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사업’이란 게 있긴 있었다. 국가안보라든가 남북 교류협력 관련 사업 등이 대상이었을 정도로 아주 제한적이었다. 정부의 남용 방지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번에 재해 예방과 지역 균형발전 사업 등을 면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국토해양부는 4대 강 살리기가 재해 예방에 해당된다고 한다.

재해 예방이든 균형발전이든 이유야 상관없다. 문제는 이 사업의 규모다. 투자비가 최소한 15조원은 될 것 같다. 정부는 한때 18조원이라고 발표한 적도 있다. 이런 초대형 국책사업을 정부 임의로 착공하겠다는 건 문제다. 그것도 법을 바꾸면서까지 말이다. 예비 타당성 조사를 하지 않거나 엉터리로 해 국민에게 엄청난 부담을 지운 사업이 너무나 많기에 하는 우려다.

3500억원이 투입된 양양공항은 매년 엄청난 적자고, 1300여억원을 들인 울진공항은 개항도 하지 못하고 있다. 포항·청주·무안 등 다른 지방의 국제공항들은 또 어떤가. 정부가 손실을 부담하다 못해 결국 코레일에 넘기는 편법을 자행했던 인천공항철도도 있다. 4대 강 살리기가 꼭 필요하다면 정부는 훨씬 더 당당했어야 했다. 설사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이었다 해도 정부는 자청해서라도 받아야 할 사업이라고 본다.

목적이 정당해도 거쳐야 할 절차와 과정이 무시돼선 안 된다. 1년 전 이맘때 겪은 촛불 사태의 교훈도 그것 아니던가. 그 난리를 쳐 가면서 얻은 교훈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안타깝다. 미래기획위원장이란 사람의 사교육 관련 발언도 마찬가지다. 목적지상주의에 빠져 있기에 그런 월권적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예비 타당성 조사를 시작하라. 그래서 해도 될 만한 사업인지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라. 그게 정 힘들다면 시행령을 개정 전으로 되돌려라. 그럼으로써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받는 사업은 이번이 마지막임을 보여라. 쉽지 않은 결정이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국민의 마음을 얻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