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실크로드·바다 통해 오간 동·서의학은 ‘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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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의학의 세계사
이종찬 지음, 몸과 마음
545쪽, 3만5000원

서양의학은 과학적이고 동양의학은 과거의 유물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서구중심주의에 매몰된 것이라는 게 지은이의 지적이다. 그에 따르면 한의학과 인도의 아유르베다, 아랍의학 등 비서구의학의 대부분은 자연주의적 이론을 합리적으로 적용하여 경험적인 관찰을 해석하고 이에 근거해 지식체계를 조직화한다는 점에서 서구의학과 마찬가지로 과학적이다. 개별 지역의 의학이 서로 별개로 발전해왔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한다. 동서양이 수천 년 동안 실크로드를 통해 교류해 왔는데 유독 의학만 독자적으로 성장해왔다는 건 무리한 주장이라는 것이다.


의사학의 관점에서 보면 실크로드는 전염병의 전파 경로이기도 했고, 동서양의 의학 서적과 의술의 교류 통로이기도 했다. 고대 인도 언어로 됐던 불경이 한문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인도 의학도 함께 중국에 전파됐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승려는 대개 의사를 겸했다.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특히 안과에 강했다.

당나라 때 중국 의서에 “환자에게 자비를 베풀고 인류를 고통에서 널리 구할 것을 기원한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은 당시 불교와 인도 의술이 함께 수용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7세기에 중국의 대표적인 의학자로 평가받았던 손사막의 전기가 승려 법장이 쓴 『화엄경전기』에 실려 있을 정도였다.

한반도는 어떤가. 고구려 의학은 중국 한의학과 당시 중국에 건너온 인도의학의 영향을 함께 받아들였다. 도교의 불로장생·연금술 ·방중술도 고구려 의학으로 스며들었다. 백제에는 의약분업제도도 있었다. 중국 남북조의 대의승·약장승 제도를 받아들여 의술을 담당하는 의박사와 약을 맡는 채약사를 각각 두었다. 통일신라시대 당나라 각지에 있었던 신라방 거주자들은 당나라에 들어와 있던 아랍 의학과 접촉, 귀국할 때 아랍 의서와 약물을 신라에 소개했다는 대목도 흥미롭다.

16~18세기 유럽은 해상 교류를 통해 중국 의학의 성취를 공유했다. 이시진이 16세기에 발간한 『본초강목』이 서구에 알려졌고, 무역업자들은 거기에 실린 약용식물 무역으로 이윤을 남겼다. 이 책은 다윈의 『종의 기원』에도 영향을 미쳤다. 17세기 중국의 침과 뜸은 네덜란드 상인에 의해 유럽에 전해졌다.

결국 동서양, 아니 세계 각지의 의학은 서로 교류하면서 상호반응을 하며 성장했다는 것이 지은이의 강조점이다. 그렇게 보면 의학 내에는 절대적인 우열도, 문화적 국수주의도 있을 수 없다. 서로 교류하며 자라는 문명이기 때문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의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지은이는 현재 아주대 의대에서 인문사회의학 교실을 맡고 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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