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문화혁명]3.현란한 하이브리드 현상…'장르파괴'(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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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장르 넘나들기는 우리 주변 여기저기서도 발견하기가 어렵지 않다.

음악.연극.미술 등 큰 장르가 합쳐지는 것은 물론 한 장르내에서도 부속장르들이 합쳐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음반가게에서 쉽게 만나는 록음악을 보자. 이 쪽의 장르해체 경향은 무척 거세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테크노 음악이 그 예다.

이 음악은 신시사이저를 이용한 음악이라 주로 춤추는데 적합해 댄스음악으로만 치부돼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강한 록비트와 몰아치는 신시사이저 연주, 거기다 사회성이 짙은 가사로 록음악과 장르를 융합하고 있다.

지난해 '딕 유어 오운 홀 (Dig your own Hole)' 이라는 앨범을 내놨던 케미컬 브러더스나 '더 팻 오브 더 랜드 (The Fat of the Land) 를 낸 프로디지는 대표적인 예이다.

프로디지의 경우 지난해 '영국 최고의 록밴드' 로 불리며 세계 순회공연을 벌였다.

이런 경향은 역으로 기존의 록그룹에도 미쳐 지난해 그룹 유투 (U2) 의 최신 앨범 '팝 (Pop)' 은 짙은 테크노 경향을 보였다.

흑인음악인 랩과 록의 만남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고 자마이카에서 유래된 레게도 록과 결합해 '서브라임' '스매시 밴드' 등 유명 그룹을 낳았다.

국내공연을 보자. 지난 16일 서울 동숭동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전위예술 행사인 '바디 드로잉' .춤판의 유망주인 김효진과 실험적인 행위예술을 선봬온 이윰, 자칭 '음악의 조립.해체가' 라는 김동섭이 만나서 펼친 퍼포먼스다.

스스로 '이미지 시어터' 라고 해서 강렬한 시각적 효과만으로 전체를 이끌고 있다.

춤도, 음악도, 미술도 아니다.

각자의 특성을 섞어 어느 장르에도 해당하지 않는 시선한 느낌의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지난해 세계연극제에 등장해 우리 관객들을 놀라게 한 마기 마랭 무용단의 공연도 그중 하나다.

이 무용단의 '바테르조이' 와 '메이 비' 공연은 무용과 연극, 동작과 언어를 조합했다.

춤 동작 사이사이에 대사와 비명을 넣어 장르를 넘어선 완전히 새로운 하이브리드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96년 '빌보드' 라는 이름의 록발레 공연을 가졌던 미국 조프리 발레단 제랄드 알피노 단장의 말. "우아한 동작이나 펼치는 고전발레만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

팝.재즈.디스코.탱고 등 대중에게 새롭게 익숙한 춤을 고전발레 기교와 결합시켜 대중에게 다가갈 때 그 생명력이 보다 강해진다.

" 역시 우리의 문화의식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안혜리·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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