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당선자 '대기업 구조조정안에 불만'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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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일 오전 국회 박태준 (朴泰俊) 자민련총재실. 비대위 김대중 당선자측 위원인 장재식 (張在植) 의원과 이헌재 (李憲宰) 실무기획단장이 朴총재를 찾았다.

예정에 없던 긴급보고를 위해서다.

19일 발표된 대기업 구조조정안에 대한 설명과 후속대책이 논의됐다.

같은시간 박지원 (朴智元) 당선자대변인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대기업 구조조정안에 대한 金당선자의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쏟아냈다.

朴총재도 회의직후 기자들과 만나 "과감한 사재 (私財) 출자 등 고통을 분담하려는 대기업 총수들의 가시적 노력없이 어떻게 노사정합의가 제대로 되겠느냐" 며 불만을 털어놨다.

朴총재의 발언은 특히 이날 아침 金당선자와의 전화통화 직후 나온 발언이어서 당연히 金당선자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됐다.

金당선자는 일단 朴총재와 朴대변인의 입을 빌려 속내를 드러냈다.

자신이 전면에 나서는 모양은 피했다.

그러나 메시지는 분명하고 강했다.

우선 그룹 총수들의 '제살깎기 고통분담' 노력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근로자들의 봉급이 깎이고 1백만명 이상의 실업자가 거리로 내몰릴 절박한 상황인데도 총수들의 희생노력은 미비하다는 것이다.

"IMF사태를 촉발한 책임의 상당부분이 재벌에 있다" 는 국민정서와 비난여론도 감안된 것이란 해석이다.

金당선자측 핵심참모는 "근로자만 희생하고 기업은 더 잘 살게 된다는 인식이 남아있는한 경제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며 고통분담을 강조했다.

진행중인 노사정협의회의 국민협약 도출을 위한 분위기 조성효과도 고려했다는 전언이다.

동시에 앞으로 개혁안을 발표할 나머지 그룹들에 대한 '경고' 의 뜻도 담겨있다.

시작단계부터 철저히 쐐기를 박아 '확실한 구조조정' 을 얻어내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부실계열사를 처분하는 수준에 그친 이번 조정안은 문어발식 경영단절이란 본래적 의미의 재벌개혁에 못미친, 무성의한 개혁에 그쳤다는 게 金당선자측 시각이다.

주력업종만 살리고 '잘 나가는' 기업도 맞바꾸는 이른바 '빅 딜' 이 있어야 경쟁력도 살아나고 외국 금융기관의 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처럼 철저한 구조조정을 요구하면서도 金당선자는 전면에 나서길 꺼리고 있다는 점이다.

당선자측은 "언론보도를 보고 내용을 알았다" 며 사전보고조차 받은 사실이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는 이후 구체적 개혁안에 대해서도 직접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의도다.

내부적으론 기업접촉 창구를 朴총재로 단일화했다.

여러 채널을 둬 쓸데없는 오해와 잡음이 일어나는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金당선자측 관계자는 "당선자가 일일이 챙기다보면 훗날 '특정업체 특혜설' 과 같은 루머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다" 고 우려한다.

비상경제대책위도 "우리는 재벌개혁의 구체안을 접수해 '밤놔라 대추놔라' 할 위치에 있지 않다" 고 밝혔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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