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유 있는 바이 코리아 … 외국인 매수 지속될 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코스피지수가 장중 한때 1300선을 넘었다가 1297로 거래를 마친 지난달 6일. 대형 펀드를 굴리는 국내 한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는 “이제는 이익을 실현해야 할 때”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기업의 이익에 비해 주가가 비싸졌다”고 설명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주식 매도에 나섰다.

그러나 외국인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4월 6일부터 30일까지 19거래일 동안 기관투자가들이 17일 연속 순매도를 하는 동안 외국인은 14일에 걸쳐 순매수를 했다. 기관이 유가증권시장에서만 모두 4조8492억원어치를 순매도한 데 반해 외국인은 3조2832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했다.

이 같은 엇갈림은 시장을 보는 시각의 차이보다는 각자가 처한 상황 때문으로 분석된다. 즉 외국인과 기관투자가 모두 현재 국내 주식시장이 실제 가치에 비해 비싸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외국계 증권사인 메릴린치와 CLSA는 국내 주식이 고평가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보고서를 연방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도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사는 이유는 따로 있다.

무엇보다 외국인의 투자 보따리에 들어 있는 국내 주식이 적다. 지난해 10월 세계 증시가 폭락하자 외국인은 현금화하기 쉬운 국내 주식을 우선적으로 처분했다. 이는 2004년부터 계속 이어진 현상이었는데 특히 2007년과 2008년의 외국인 이탈 규모가 두드러졌다.

이런 상황에서 올 들어 국내 주가가 외국에 비해 크게 뛰어오르자 외국인 투자자들은 적잖이 당황해 하고 있다. UBS증권 마이클 진 아시아지역 주식영업본부장은 “한국 주식 편입 비율이 작은 상황에서 코스피지수가 급등하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2~3주 전부터 몸이 달았다”며 “10% 정도 조정을 받으면 한국 주식을 사겠다던 외국인들이 2~3%의 조정에도 뛰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올 들어 선진국 펀드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이머징 펀드로 유입되고 있는 점도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를 촉발하고 있다. 돈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직면한 문제는 딱히 들어갈 만한 이머징 마켓이 드물다는 점이다. 마이클 진 본부장은 “금융위기의 불안감을 안고 있는 동유럽과 경기 회복이 더딘 라틴아메리카에는 외국인들이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며 “결국 외국인이 선택할 수 있는 곳은 중국과 한국”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향후 원화 강세가 예상되는 점도 외국인 매수의 요인으로 거론된다. 달러를 원화로 바꿔서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외국인은 원화 가치가 올라가면 환차익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은 “달러를 갖고 있는 외국인은 주식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환에서 손실을 보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화로 투자하는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이 같은 안전장치가 없어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이와 함께 코스피지수가 1300선을 넘어가면서 늘고 있는 펀드 환매도 기관투자가들의 실탄을 축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자산운용사의 한 펀드매니저는 “환매 규모가 아직 작은 편이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서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희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