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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가 보는 21세기 의료]4.노화방지 어디까지 가능할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2020년 4월15일 아침. 朴노인은 잠에서 깨어나면서 가벼운 심적 갈등을 느꼈다.

하필이면 둘째 아들 성인식과 자신의 인터넷 중매 날이 겹칠게 뭐람. 그는 올해로 90세를 넘어섰다.

몇년전 아내와 사별했지만 요즘엔 가상공간에서 만난 여성들과 데이트를 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그는 제2의 성인식을 치루려는 60세 된 아들이 조금은 못마땅했다.

21세기 들어서 빠르게 발전한 노화연구 덕분에 아들은 청년같이 젊고 건강하다.

암벽등반과 급류타기와 같은 과격한 운동을 즐기는가 하면 새 전공을 위해 다시 대학에 입학했다.

본격적인 '인생 이모작시대' 가 도래한 것이다.

내친 김에 아들 얘기를 더해보자. 그는 아버지를 닮아 지금쯤 완전 대머리가 돼있어야 했다.

그러나 2005년 인체게놈사업으로 대머리유전자가 밝혀지면서 치료제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인공모를 이식한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자연스런 머리카락을 자랑한다.

그의 팽팽한 피부는 레틴A를 포함한 항산화화장품 덕분이었다.

주름살의 원인인 콜라겐의 감소를 줄이기위해 보습.자외선 차단.세포의 산화를 막는 화장품들이 줄줄이 개발됐다.

꾸준히 화장품을 바르는 것만으로 10~20년은 피부의 노화를 늦출 수 있게 된 것이다.

알츠하이머를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약은 노인들의 지적인 능력을 향상시켰다.

태아의 뇌세포를 배양해서 복제한 이 기능개선제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활성시키고 뇌세포 파괴를 억제했다.

朴노인은 아침식사를 하면서 이 미지의 여성과 데이트를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아들보다는 '내 인생' 이 더 중요하므로. 그는 한껏 멋을 부리고 몸에 향수까지 뿌렸다.

향수에는 여성을 끌어당기는 페로몬향이 들어있다.

동물의 성적흥분을 높여주는 페로몬의 구조가 밝혀지면서 이를 합성한 향수가 성적반응이 떨어진 노인들 사이에서 날개돋힌듯 팔렸다.

코로 감지되지 않으면서도 파트너의 행동을 눈에 띠게 바꾸어놓는 탁월한 효능을 플레이보이 기질의 朴노인은 놓치지 않았다.

'섹스' . 인간의 행태중 유인원시대부터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남녀의 생식활동일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는 성적접촉 없는 섹스리스 커플이나 성중추만을 자극해 쾌감을 맛보는 해괴한 (?

) 부부들이 늘어나지만 그는 20세기까지 답습한 인류의 성행태를 가장 숭배했다.

이같은 원시적 성을 향유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난 세기말 한 제약회사는 먹는 발기유발제를 개발, 주사제의 불편함을 개선했다.

음경동맥이 아예 망가진 사람들은 보형물을 심었는데 종래 고환에 장착된 거치장스러운 스위치를 없애고 가벼운 피부터치만으로도 발기가 되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폐경기 이후 여성에겐 부작용 없는 에스트로겐이 보충요법으로 대중화되고 있었다.

따라서 몸이 붓거나 자궁암.유방암에 대한 걱정없이 피부의 노화, 골다공증 예방은 물론 질벽이 얇아져 섹스를 거부하는 일은 사라졌다.

두사람은 대형스크린이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첫 대면을 했다.

75세난 이 여성은 눈가와 입술 주변의 부분 주름을 제외하고는 나무랄데 없는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온몸을 다듬어주는 토탈성형과 인공피부 덕분일 것이다.

이 여성은 무척 외로움을 타는 것 같았다.

85세가 넘는 이들은 여성이 남성의 2.5배나 돼 실제 임시 배우자를 찾는데도 상당한 '경쟁력' 이 있어야 했다.

춤과 대화가 가능한 여성용 로버트와 동거하거나 인위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감정조절약을 복용하는 여성이 늘어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둘은 오래 사귄 연인처럼 데이트를 즐겼다.

노인을 위한 시뮬레이션 레저와 스포츠를 즐기고 예술을 감상하며…. 불과 한세기 전 인간의 수명은 50세에 불과했다.

동물처럼 생식 이전의 삶만이 존재했었다.

그로부터 불과 1백여년이 지난 지금 인간은 생식후의 삶에 더 큰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

노 (老) 커플은 이날 하루 '21세기 지구촌은 노인들로 뒤덮히고 있다' 고 개탄하는 미래학자의 말을 귓전에 흘리며 '건강 1백세시대' 의 삶을 만끽했다.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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