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국 외채협상 뉴욕 결전 입장…미국 금융가 "한꺼번에 빨리" 재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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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 금융기관들이 외채협상 일괄 타결을 요구하는 것은 한국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최대한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내야겠다는 판단에서다.

차차 한국의 신용도가 올라가면 지금처럼 유리한 조건을 요구하기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이한 (離韓) 한 로렌스 서머스 미 재무부 부장관이 “미국 금융기관과의 협상이 끝나기 전에 미 정부차원의 조기지원은 없을 것” 이라며 “조건을 따지기 보다는 빨리 (미 금융기관과의) 협상을 마치는게 중요하다” 고 말한 것도 같은 차원의 얘기다.

최근 외채협상에 나서는 미국 금융기관의 두 축인 J P 모건과 골드먼삭스는 각기 다른 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일괄 타결' 이라는 원칙에는 이의가 없다는 소식이다.

미국 금융기관의 한 관계자는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J P 모건 안과 골드먼삭스 안이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며 “두 안을 종합해 타결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 이라고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조건만 유리하게 일괄 타결할 수 있다면 굳이 한쪽의 안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미국 정부는 이들의 뒤에서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게다가 미 정부는 2월초 열리는 미국 의회에서 대한 (對韓) 자금지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일 것이라는 점을 은근히 강조해가며 한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우리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임창열 (林昌烈)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이 “외국 금융기관들이 우리의 어려운 점을 이용하고 있다” 고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거절할 수도 없는 입장” 이라고 말한 데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도 정부는 일단 몇가지 협상 원칙을 세웠다.

첫째 일괄 타결보다는 단계적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지급보증을 통해 일단 금융기관 단기외채의 일부를 장기로 전환한 뒤 국채발행.신디케이트론 등은 신용등급 조정상황 등을 봐가면서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는 뜻이다.

지급보증 기간도 최대 5년까지로 묶었다.

둘째 지나친 금리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금융기관들은 한국의 신용등급을 토대로 국제금융시장에서 형성되는 금리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경우 금리는 12%안팎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정부는 그러나 신용등급 자체에 문제가 있다며 고금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방침을 세웠다.

아울러 콜옵션 (만기전 중도상환) 이 3년내에라도 가능하도록 양보를 얻어낼 방침이다.

셋째 미국 외의 다른 국가 정부나 금융기관과는 상황에 따라 개별협상도 벌이겠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에 대한 1, 2위 채권국이면서도 협상이 미국 주도로 흘러가는데 대해 불만을 내비치고 있는 일본과 독일에 기대를 걸고 있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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