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장규 칼럼

'출장' 나온 복지장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정부 안에서도 끗발과 영향력에 따라 우수 인재들이 쏠린다. 자유당 시절엔 내무관료를 제일로 꼽았다. 그러다가 박정희 시대 이후 경제관료들이 판을 쳤었다. 이젠 경제관료도 한물 가고 '복지관료'들이 상한가다. 이 정부 들어서는 학자들도 성장보다 복지나 분배를 전공해야 힘을 쓴다.

*** 갈수록 중요한 복지행정

부총리 부서인 재정경제부도 기획원.재무부 시절에 비하면 '이빨'이 다 빠졌다. 민간 중심의 시장경제가 커지면서 정부의 역할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복지 쪽은 이야기가 다르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복지정책은 중요해지고 정부 역할도 커진다. 다른 어떤 정책보다 어렵고 복잡하다. 한번 그르치면 국민이 대를 물려가며 고생해야 한다. 복지정책을 우습게 알았다가 혼쭐났던 게 김대중 정부였다. 보건복지부가 개혁의 이름 아래 밀어붙였던 의약분업 때문에 얼마나 애를 먹었던가. 정권의 뿌리까지 흔들거렸다. 전문적인 계산과 충분한 검증없이 아마추어들이 주먹구구로 해서 빚어낸 불행이었다. 전두환 정권 막판에 결정했던 국민연금제도는 당시엔 뭐가 잘못됐는지도 몰랐다가 세월이 지나서야 뒤늦게 거덜이 났다고 법석을 떠는 경우다. 연금의 기본설계조차 틀렸던 탓에 지금 와서 다시 올리고 내리고 야단인 것이다. 그동안 복지정책의 중요성과 어려움을 소홀히 했다가 톡톡히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가장 큰 교훈은 복지정책을 정치적 약속이나 선심에 의존했다가는 크게 일을 그르친다는 사실이다.

이런 시행착오를 충분히 거쳤으니 '참여정부'는 뭔가 다를 것으로 기대했었다. 특히 어느 정권 때보다도 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부인 만큼 각별한 비중을 둘 것으로 예상했었다. 적어도 복지부 장관의 역할이 중요한지라 그전 정부와 달리 장관을 정치적으로 끼웠다 뺏다 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조각 때 김화중 장관을 임명할 때도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 때부터 최적임자로 의중에 뒀던 인물'이라고까지 치켜세웠었다.

자, 그랬던 터에 그 '최적임자'를 갈아치우고 거물 정치인을 새 복지부 장관에 앉혔다. 오래 전부터 그런 소문이 나돌긴 했었다. 이에 대해 당사자 자신이 복지행정을 맡을 만한 준비가 안 됐다고 고사해 '역시 훌륭한 정치인이구나'하는 생각까지 들게 했었다. 복지문제가 워낙 골치 아프고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자리인 데다 거물 정치인 스스로가 직접 나서서 적임이 아니라고 사양하니 당연히 딴 사람이 되겠지 했다. 노 대통령도 정부행정에 정치적 입김을 차단하겠다고 누차 강조해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순진한 기대에 불과했다. 복지정책의 비전이니 전문성이니 하는 그런 골치 아픈 건 조무래기 실무자들이나 하는 이야기이고, 모든 것은 역시 큰 인물들의 '정치 흥정'에 의해 한순간 결정되는 걸 모르고 어리석은 기대를 걸었던 셈이다.

어쨌든 엎질러진 물. 신임 장관이 난마처럼 얽힌 복지행정을 여하히 잘 풀어 나갈지가 걱정이다. 걱정의 첫째 이유는 그가 정치인, 그것도 대망의 거물 정치인이라는 사실이다. 이해집단 사이에서 욕 먹어가며 냉혹한 심판관 노릇을 해야 하는 일이 사방에 널려 있는데, 정치판에 두고온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할 그에게 과연 어떤 모습의 복지행정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정치적 입김이 쏘이는 복지행정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지금까지의 경험이 말해준다. 한마디로 '복지행정=선심행정'이었다.

*** 정치흥정에 의해 자리 결정

걱정하는 둘째 이유로 복지부 장관은 숫자에 밝아야 하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숫자에 어두우면 자연히 돈 들어가는 데 신경쓰기보다 광내고 폼잡는 쪽에 치우치게 마련이다.

셋째 이유가 진짜 중요한데, 신임 장관이 결코 오래 앉아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의원총회에서 자신의 복지부 장관 부임을 두고 "출장 다녀오겠다"고 한 말은 본인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딱 맞는 인사말이었다. 아무리 중국의 고사를 인용해 가면서 장관직 수행의 결의를 강조해도 누가 곧이듣겠나. 때가 되면 그때대로 새 이유를 둘러대고 나갈 게 뻔한데. 길어야 1년 아니겠나. 제발 재임 동안 별 탈이나 없었으면 좋겠다.

이장규 경제전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