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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인터넷 혁명과 투명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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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달 22일 우리는 한토막의 뉴스에 가슴저려야 했다. 재혼 때 데려온 자신의 딸을 여섯살 때부터 성추행해온 남편을 법원이 2심 구속기간 만료 때문에 석방하려 하자 검지손가락을 잘라 재판장에게 보낸 분노의 모정 이야기였다. 그 남편은 미국 명문대를 나온 교수 출신 사업가다.

인터넷 신문에 이 소식이 보도되자 불과 2~3시간 만에 그 남편의 실명과 인생 이력뿐 아니라 얼굴 사진까지 인터넷 사이트에 퍼져나갔다.

물론 그 남편은 아직 유죄 확정판결을 받지않았으므로 만일 무죄라면 엄청난 인권침해를 당한 것이다. 유죄로 결론난다면 법원 판결보다 수천배 무서운 처벌을 받은 셈이다.

이 일은 세계에서 가장 '화끈한'인터넷 생활혁명을 겪고 있는 한국에서 인터넷이 갖는 매서운 힘을 보여준다. 한국은 국민 대다수가 인터넷에 '제2의 생활공간'을 갖고 있는, 지구촌에 유례없는 나라다. 게다가 급한 국민성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뉴스나 이야깃거리가 인터넷에 던져지면 한두시간 안에 수많은 네티즌 손에 그 진상이 밝혀지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대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가위 전 국민의 기자화라 할 만하다. 물론 부작용도 크다. 제도권 언론에서 연예인 K씨라고 보도하면 인터넷엔 바로 이런저런 실명들이 거론된다. 인권침해 소지가 아주 크다. 그러나 사안에 따라서는 다수의 네티즌이 다양한 차원의 정보를 교환하다가 그럴듯한 검증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혼성 댄스그룹 코요태의 신곡 '불꽃'이 1970년대 일본 노래를 표절해 작곡됐다는 최근의 논란도 인터넷이 불을 붙인 것이다. 표절 여부는 더 검증해 봐야겠지만 이 사례도 이제 대한민국엔 인터넷 때문에 '비밀'이라는 게 발붙이기 어려워졌다는 걸 알게 해준다. 정보 독점도 안된다.

요즘 공무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게 자체 인터넷 홈페이지라고 한다. 민원인이 공무원의 비리나 부당한 처사 등을 해당 기관 홈페이지에 올리면 바로 조사를 받고 상응한 조치가 따르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부터 일반인까지 모두 인터넷의 감시망에 포위되어 있는 셈이다.

유별난 한국의 인터넷 여론 파워는 걱정되는 측면도 큰 것이 사실이다. 적잖은 경우 비합리적이고 선동적인 '떼거지' 매도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터넷 혁명이 가져온 한국 사회의 투명화 효과를 주목하려 한다. 온갖 권력기관이나 이익집단이 누려온 과도한 힘을 인터넷이 제거하고 있다. 인터넷의 힘이 잘만 조절된다면 훌륭한 직접민주주의의 장이 될 가능성을 보고 있다.

인터넷 중앙일보가 운영 중인 '디지털 국회'(www. joongang. co. kr/assembly)도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슈에 대해 인터넷 논객들이 논리적이고 품격있는 토론을 통해 대안을 모색한다. 욕설류의 글을 쓰는 인사에 대해서는 논객들이 자체 정화도 해낸다.

각 사이트들이 이런 자체 정화 활동을 키우고 입법적인 규제도 가해 한국에서 인터넷이 투명 사회를 이루는 촉매제가 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지금 서울의 교통체제 개편에 대해 시민들이 인터넷에서 맹렬한 비판을 하고 있다. 이는 어떤 정책이 현장에서 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현장감있게 알게 해주는 좋은 공간이 생긴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정부와 각 자치단체는 행정 서비스 혁신의 통로로 인터넷을 활용하라. 그리고 투명해져라. 천주교 원로 정의채 신부는 최근 이런 말을 했다. "새로운 천년에 들어섰는데 이젠 한국 사회의 투명성이 생명(핵심 과제)이다."

김 일 디지털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