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핵 문제, 전략적 결단 할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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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가민가하다가 결국 북한의 핵실험을 우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사태의 긴급성에 대한 인식은 나라 안팎 어디서도 찾기 어렵다. 그러다가 북한이 정말로 핵실험을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모든 일에는 흐름이 있다. 북한 내부에는 지난 수십 년간 핵무장을 추진해 온 조직적.정치적 흐름이 있다. 핵무장을 맡아 온 대규모 조직이 있고 투자된 자원의 동원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명분이 있다. 그 흐름이 가진 추진력이 마침내 핵무장을 공식화하는 핵실험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무장은 상대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북한의 핵은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 문제다. 그래서 관련된 여섯 나라가 모여 논의하는 6자회담의 장이 마련됐다. 북한의 핵실험은 그 장을 파괴하여 협상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단절할 것이다. 이후의 흐름이 어디로 치달을지는 가히 말하기 어렵다. 북핵 문제는 그처럼 긴박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와 관련 각국은 북한의 핵무장이 갖는 정치군사적 의미에 대해 진중한 논의를 한 적이 없다. 북한의 핵무장이 동아시아 차원에서 핵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추상적 논의는 있었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해 갖는 의미를 논의한 적은 없었다.

두 가지만 짚어보자. 차마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만의 하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북이 핵무장한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그 전쟁이 핵전쟁이 될 가능성은 당연히 높아진다.

그래도 핵무장의 결과 전쟁 가능성이 낮아진다면 두 가지 효과가 상쇄되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전략이론가들의 공통된 입장은 상대의 선제 핵공격을 받고도 반격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제2차 가격능력이 없는 한 핵무장은 전쟁의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곧 한반도의 초보적 핵무장은 전쟁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결국 지금 상태에서 북한이 핵무장을 공식화하면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 전쟁이 핵전쟁이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것은 설마 하면서 외면해서는 안 되는 엄연한 전쟁과 평화의 문제, 삶과 죽음의 문제다.

삶과 죽음의 문제는 전략적 문제다. 지난 2년 반 동안 북핵 문제가 악화일로를 걸어오고, 그러다가 지금 이 지경에 이른 것은 관련 당사국들이 전략적 차원이 아닌 전술적 차원에서 접근한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일본이 국내 정치적 이유로 납치 문제와 북핵 문제를 연계시킨 것이 전술적 접근이다. 러시아가 6자회담의 일원이 된 것을 계기로 동북아 지역 문제에서 발언권 강화에만 연연한다면 이도 전술적 고려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빌미로 미국의 대만 정책 변경을 노린다면 이것도 전술적 잔머리다. 미국이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을 미사일 방어망 구축의 명분으로 이용한다면 이것도 전술적 차원의 접근이다.

한국이 북핵의 해결에 초점을 두지 않고 '평화적' '주도적'이라는 수사에 집착한다면 이것도 본말의 전도다. 무엇보다 북한이 문제를 악화시켜 몸값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전술적 차원의 잔머리다.

바야흐로 북핵 문제는 전술이 아닌 전략적 차원의 분수령에 직면하고 있다. 작아도 한반도, 크면 동북아 지역 모든 사람의 삶과 죽음의 지평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됐다. 이럴 때 이들의 삶과 죽음을 책임진 각국 정부가 작은 전술적 이익에 탐닉하여 큰 전략적 이익을 희생한다면 그야말로 소탐대실이다.

6자회담의 5자가 전략적 차원에서 문제를 재고하여 북한에 전략적 차원의 선택을 강요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이 정권의 장기적 생존과 멸망이라는 전략적 차원의 선택을 할 때다. 여기에 이른 이상 전술적 차원에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불이 뜨겁다는 것을 굳이 데워봐야 아는가?

김태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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