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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작은 것이 아름답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인형의 작은 세간살이들, 연못에서 집어올린 작은 연꽃잎들, 아주 작은 접시꽃, 무엇이든지 작은 것은 모두 아름답다."

일본의 고대소설에 나오는 이 대목은 일본과 일본인의 '작은 것' 에 대한 집착을 한마디로 대변한다.

80년대초 일본에서 출간돼 선풍적 화제를 일으켰던 이어령 (李御寧) 씨의 '축소 (縮小) 지향의 일본인' 은 바로 '작은 것' 에 대한 일본인의 그같은 집착을 분석하고 지켜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책이다.

이 책이 일본의 지식인 사회에까지 커다란 파문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축소지향' 을 버리고 '확대지향' 으로 나가는 것은 자기부정 (自己否定) 이며 결국 이웃나라를 괴롭히고 스스로를 파멸시키게 된다는 일깨움 때문이었다.

종전 (終戰) 10년만인 55년 일본의 작고 예쁜 트랜지스터가 순식간에 세계시장을 석권하면서 경제 도약의 기틀을 마련한 것도, 그 무렵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이케다 (池田勇人) 총리를 가리켜 '트랜지스터 장사꾼' 이라 부른 것도 그와 관련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

자기네 발명품도 아닌 '작은 것' 이 일본을 일으켜 세웠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작은 것' 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선 (善) 의 개념까지 함축하고 있다면 '큰 것' 은 그 반대의 개념일 수도 있다.

예컨대 지구상의 가장 큰 저택은 바닥 면적이 2만1천여㎡나 되지만 가장 작은 집은 4㎡가 조금 넘는다.

또 가장 무거운 차는 6t이 넘지만 9.5㎏밖에 안되는 가장 가벼운 차도 있다.

미추 (美醜) 는 말할 것도 없고, 선악 (善惡) 의 개념으로도 확연히 구분될 것이다.

일본인들이가장 많이 살고있는 아파트가 13평형이라지만, 또 미국.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가장 선호하는 차가 소형차라지만 어쩐 일인지 우리는 줄곧 '확대지향' 만 되풀이해 왔다.

넓은 아파트와 큰 차를 타는 것이 바로 신분상승을 뜻한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아파트를 줄여 차액을 예금하고 큰 차를 작은 차로 바꾸는 경향이 부쩍 늘고 있다지만 이런 추세가 얼마나 지속될는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확대지향이 곧 자기부정임은 일본인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는 기본인식 아래 집이나 자동차는 물론 씀씀이까지도 줄여 나가는 것이 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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