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이버 세계대전 터지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미국이 전면적인 사이버 전쟁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미 정부나 기업의 인터넷에 침투해 기밀정보를 빼가는 해외 인터넷 서버를 무력화하고, 나아가 다른 나라 정부의 인터넷에 침투해 정보를 빼오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NYT) 인터넷판이 28일 보도했다. 그동안 소극적으로 사이버 보안에 주력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사이버 방어만으로는 미국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어 사이버 선제공격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NYT는 전했다. 그러나 사이버 선제공격은 다른 나라의 사이버 공격을 유발해 사이버 전쟁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미 국방부는 사이버 보안을 강화하고 새로운 세대의 온라인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비밀리에 가상의 미래 인터넷을 개발하고 있다. 적성국들이 사이버 공격으로 미국의 전력망이나 통신·항공시스템을 무력화하거나 금융시장을 마비시켰을 때 대응전략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내셔널 사이버 레인지(NCR)’로 불리는 이 계획에는 영국 군수업체인 BAE시스템스와 스파르타,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학연구소 등이 경합하고 있다. NYT는 1950년대 비키니섬의 수소폭탄 실험이 본격적인 핵 시대를 연 것과 같이, NCR이 디지털 시대의 한 획을 그을 것으로 내다봤다. 당시 핵 경쟁에 나선 미국과 소련은 비키니섬에 떨어진 수소폭탄의 엄청난 위력을 보고 핵 전쟁을 일으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사이버 보안의 취약성을 깨닫고 사이버 전략을 재검토하고 있다. 미 정부와 기업의 컴퓨터는 중국과 러시아 등으로부터 하루 수천 건의 사이버 공격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바마는 지난해 의회가 통과시킨 170억 달러(약 23조원)의 5개년 사이버 보안 예산을 더 늘릴 방침이다. 백악관에 사이버 보안을 총괄하는 책임자를 둬 사이버 보안 관할권을 둘러싼 부처 간 갈등도 조정할 계획이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행정부는 인터넷 방화벽을 높이고 컴퓨터 바이러스를 제거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럼에도 사이버 보안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사이버 전쟁도 핵 억지력과 비슷한 “상호 검증된 파괴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 정보당국은 컴퓨터 칩을 제조할 때 비밀리에 악성 코드를 심어 적성국 정부의 컴퓨터들을 인터넷으로 원격 조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산 칩이나 컴퓨터 서버를 쓸 때 중국의 사이버 공격에 노출되는 것을 응용한 셈이다. 미 국방부는 사이버 공격의 진원지인 중국·러시아 등의 인터넷 서버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잠입시켜 해킹 프로그램을 파괴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는 아직 전면적인 사이버 전쟁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NYT는 전했다.

마이클 매코널 전 국가정보국장은 “미국의 대형 은행 한 곳이 사이버 공격을 당했을 때 세계 경제에 주는 충격은 9·11 테러 때보다 심각하고, 미국에서 돈의 흐름이 차단됐을 때 입는 피해는 핵무기 공격 시의 파괴력에 못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고서들은 무선기지국이나 응급구조 통신망, 병원 시스템이 사이버 공격으로 폐쇄될 때 미국 사회가 대혼란에 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미 국방부와 국가안보국(NSA)은 해커 개인이 아닌 국가가 주도한 인터넷 공격을 ‘하이브리드 전쟁’이라고 이름짓고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전략 마련에 나서고 있다.

정재홍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