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는 사이버 보안을 강화하고 새로운 세대의 온라인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비밀리에 가상의 미래 인터넷을 개발하고 있다. 적성국들이 사이버 공격으로 미국의 전력망이나 통신·항공시스템을 무력화하거나 금융시장을 마비시켰을 때 대응전략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내셔널 사이버 레인지(NCR)’로 불리는 이 계획에는 영국 군수업체인 BAE시스템스와 스파르타,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학연구소 등이 경합하고 있다. NYT는 1950년대 비키니섬의 수소폭탄 실험이 본격적인 핵 시대를 연 것과 같이, NCR이 디지털 시대의 한 획을 그을 것으로 내다봤다. 당시 핵 경쟁에 나선 미국과 소련은 비키니섬에 떨어진 수소폭탄의 엄청난 위력을 보고 핵 전쟁을 일으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사이버 보안의 취약성을 깨닫고 사이버 전략을 재검토하고 있다. 미 정부와 기업의 컴퓨터는 중국과 러시아 등으로부터 하루 수천 건의 사이버 공격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바마는 지난해 의회가 통과시킨 170억 달러(약 23조원)의 5개년 사이버 보안 예산을 더 늘릴 방침이다. 백악관에 사이버 보안을 총괄하는 책임자를 둬 사이버 보안 관할권을 둘러싼 부처 간 갈등도 조정할 계획이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행정부는 인터넷 방화벽을 높이고 컴퓨터 바이러스를 제거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그럼에도 사이버 보안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사이버 전쟁도 핵 억지력과 비슷한 “상호 검증된 파괴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 정보당국은 컴퓨터 칩을 제조할 때 비밀리에 악성 코드를 심어 적성국 정부의 컴퓨터들을 인터넷으로 원격 조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산 칩이나 컴퓨터 서버를 쓸 때 중국의 사이버 공격에 노출되는 것을 응용한 셈이다. 미 국방부는 사이버 공격의 진원지인 중국·러시아 등의 인터넷 서버에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잠입시켜 해킹 프로그램을 파괴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는 아직 전면적인 사이버 전쟁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NYT는 전했다.
마이클 매코널 전 국가정보국장은 “미국의 대형 은행 한 곳이 사이버 공격을 당했을 때 세계 경제에 주는 충격은 9·11 테러 때보다 심각하고, 미국에서 돈의 흐름이 차단됐을 때 입는 피해는 핵무기 공격 시의 파괴력에 못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고서들은 무선기지국이나 응급구조 통신망, 병원 시스템이 사이버 공격으로 폐쇄될 때 미국 사회가 대혼란에 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미 국방부와 국가안보국(NSA)은 해커 개인이 아닌 국가가 주도한 인터넷 공격을 ‘하이브리드 전쟁’이라고 이름짓고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전략 마련에 나서고 있다.
정재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