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송달송 캉드쉬 총재 화법…띄워주는 말속 '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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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제통화기금 (IMF) 이 한국경제의 칼자루를 쥔 이후 미셀 캉드쉬 총재의 말 한마디는 우리에게 큰 무게를 갖는다.

12일 한국을 다시 방문할 그가 예전에 즐겨 썼던 우회적 경고법을 어떻게 구사할지 관심거리다.

그는 국제금융기구의 총재답게 교묘한 정치적 수사 (修辭) 를 쓰지만 발언내용을 잘 관찰하면 늘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발언을 우리 입맛에 맞게 자기 중심적이고 낙관적으로 해석하다 결국 벼랑끝 위기에 몰렸다.

그는 자신의 본심을 독특한 조건법으로 표현하곤 한다.

지난해 3월 한보사태 이후 한국경제 위기론이 등장했을 때 그는 “한국은 멕시코와 달리 균형과 안정을 이루고 있다” 며 “경상수지.부실 금융제도 개선과 인플레 억제가 이뤄진다면 성장을 지속할 것” 이라고 말했다.

외채와 정부규제 문제도 언급했다.

당시 한국사회는 이 발언을 한국경제에 대한 낙관론으로 받아들였다.

지금 보면 조목조목 한국경제의 문제를 지적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외환사정이 크게 나빠진 지난해 11월부터는 어투가 달라진다.

“한국이 금융질서와 신뢰를 회복할 것으로 기대한다.” (6일)

“건전한 정책이 뒷받침되면 아시아는 짧지만 격심한 침체를 거친 후 성장할 것이다.” (13일)

말을 귀담아 듣지 않으니 직접 경고하는 쪽으로 화법을 바꾼 것이다.

급기야 14일에는 "대외차입과 독점.과도한 규제.악성부채 등이 문제" 라며 직설적으로 문제를 지적했다.

지난해 11월21일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한 뒤에는 또다시 정치적 수사가 등장한다.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노력하면 전화위복의 계기” (11월29일) 라고 말한 뒤 사흘후 “경제구조와 금융시스템을 개선하면 한국경제는 과거보다 훨씬 강해질 것” 이라며 특유의 조건법을 다시 사용한다.

한국경제를 강도높게 비판했던 캉드쉬는 지난해 12월 1차 금융지원에도 불구하고 한국 외환사정이 호전되지 않았으나 오히려 “이행조건을 참고 견딘다면 최악의 상황은 지나간 것” 이라고 말했다.

윤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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