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벌정책 진로와 과제]2.고성장견인·이젠 빛바랜신화…한국재벌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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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 재벌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긍정적 기능과 함께 많은 문제점을 누적시켜 왔다.

특히 IMF가 지적한 한국 기업의 과다한 차입비중과 전근대적인 소유.지배구조의 문제는 바로 재벌의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재벌이 안고 있는 3대 문제점을 정리한다.

◇ 차입 경영 = 최근 외환위기 속에 드러난 우리나라 재벌의 취약성은 과다한 차입의존으로 요약된다.

96년말 현재 30대 재벌의 부채비율은 무려 3백86.5%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턱없이 높다.

자기자본보다는 금융권 여신을 통해 사업을 확장해 왔다는 얘기다.

이같은 차입의존 경영방식은 독과점 이윤이 보장되고 인플레가 만연한 상황에서는 차입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수익을 극대화하는 최선의 방책일 수 있었다.

특히 유상증자를 통해 투자재원을 마련할 경우 경영권 방어를 위한 내부지분율을 유지하는데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고 오너의 숨겨둔 재산이 노출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차입경영이 더 선호됐다.

결국 한국 재벌의 차입경영구조는 최소한의 자본으로 최대한의 경제적 이득과 영향력을 누릴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었고 재벌들은 여기에 가장 효과적으로 적응해온 셈이다.

그러나 시장개방으로 국내경쟁이 치열해지고 경기가 가라앉는 상황에서는 막대한 금융비용이 기업생존에 결정적인 치명타가 된다.

지난해 대기업의 연쇄부도 사태는 우리나라 재벌이 금융경색기에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여지없이 보여줬다.

◇ 무리한 사업확장 = 흔히 '문어발식 사업확장' 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재벌의 팽창전략은 개방화.국제화 시대에 낙후된 경영방식의 표본으로 지적된다.

전문분야에 집중해도 세계적인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든 판에 한국 재벌들은 아이스크림에서 선박에 이르기까지 돈이 된다 싶으면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잡식성 투자의욕을 불태워 왔다.

그러다 보니 30대 재벌은 대그룹은 50개 안팎, 평균해 20개 정도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같은 사업확장은 과거 정부가 특정 산업의 진출 여부를 결정하던 시기에 '남들이 손대기 전에 일단 벌여놓자' 는 시장선점 (先占) 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또 한 계열사가 어려워질 때 그와 관련이 없는 다른 업종의 계열사 수익으로 그룹 전체가 살아갈 수 있다는 이른바 '공생의 논리' 가 먹혔다.

그러나 재벌들이 같은 업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다 보니 나라 전체로 보면 중복.과잉투자가 일어나고 그 결과 가격폭락으로 제 살을 깎아먹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 소유경영 = 한국 재벌을 다른 나라의 대기업집단과 구별짓는 특징은 경영의 최고의사결정권이 소유계열주 (오너) 한 사람에게 집중됐다는 점이다.

재벌의 규모가 비대해지고 국제화.개방화 등 경영여건이 급변한 가운데서도 오너 1인 경영체제는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제규모가 작고 사업내용이 단순했을 때는 창의적인 소유경영자가 기업을 일으키고 직접 경영 일선에서 사업을 늘리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사실 한국 재벌의 대부분이 의욕적인 창업주의 개인적 열의와 추진력으로 오늘날 대기업의 초석을 놓았다.

특히 통치권자가 전권을 행사하던 시절에는 오너가 직접 나서 특정 사업의 진출권을 따내고 금융자금을 유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사업방법이었다.

그러나 국내시장 자체가 포화상태에 이르고 특혜성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상황에도 과거의 1인 지배체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오너가 전지전능한 인물이란 보장이 없는 한 이같은 소유경영체제는 항상 잘못된 의사결정의 위험을 안고 있다.

오너체제는 또 최근 부 (富) 와 기업이 함께 창업주로부터 2세로 이전되는 독특한 경영세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다 사주의 친인척들이 직.간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이른바 족벌경영의 폐해도 만만치 않다.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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