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IMF 속도 늦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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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불과 일년전에 8백40원하던 대미달러 환율이 2천원까지 올라가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했다.

김대중 (金大中) 당선자의 국제통화기금 (IMF) 협약 준수 약속, IMF와 미국에 의한 조기지원 결정으로 일단 수습은 됐지만 단기간에 국가부도로 사태가 악화돼 경제가 녹아내릴 수도 있었을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고속 질주하던 우리 경제에 96년 하반기부터 반도체.유화.철강등에서 수출단가 하락이라는 브레이크가 걸리자 인수합병과 정리해고로 빠져나갈 수 있었을 기업도 모조리 차입경영의 덫에 걸려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30대 그룹중 7개가 도산하게 되면서 상당수 종금사와 증권사의 영업정지가 불가피할 정도로 금융권의 부실이 확대돼 급기야 외국 금융기관의 대출회수와 외환위기가 닥치고 만 것이다.

외환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호적 인수합병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지원이 있어야 하고 정리해고가 허용되는 등 IMF와 합의한 구조개혁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구조개혁이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도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리해고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데는 큰 문제가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은 노동현장에서 관행으로 정착되는 것인데, 근로자의 이해와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경제가 최소한의 활력을 유지하여 재취업의 희망이 있어야 한다.

고용보험이 동시에 확대 실시된다 하더라도 기업부도와 경기침체가 어느 수준에서 억제되지 않는다면 근로자의 불안심리를 해소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IMF와의 양해각서에 제시된 2.5%이하로 경제성장률이 크게 내려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미 환율폭등으로 98년의 경상수지는 큰 폭의 흑자를 낼 가능성이 높아졌고 대외신뢰도도 빠르게 회복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금융경색과 고금리현상이 지속되어 건실한 기업마저 부도에 휩쓸리면 성장률이 큰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고 외채상환능력도 훼손된다.

고금리와 금융경색은 완화되는 것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매각대상 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에 대해서는 국제결제은행 (BIS) 자기자본비율 기준 (8%) 을 완화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8%기준을 고수하면 상당수의 차입 의존적인 한국 기업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출회수 규모가 커지고 금리가 폭등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경제의 위기는 순식간에 찾아왔지만 사실은 30여년간의 고속성장 과정에서 잉태된 것이다.

위기 해소도 시간을 두고 해나갈수 밖에 없다.

한국 경제의 구조개혁 의지에 대한 IMF의 인내심을 기대해본다.

박우규 <선경경제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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