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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년 전 청일전쟁의 악몽 끝났다’ 대양해군 부활 선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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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호 11면

① 23일 중국 해군 함정들이 칭다오 앞바다에서 해상 열병을 하고 있다. ② 후진타오 주석이 해군 함정과 전투기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③ 핵추진 잠수함 창정 6호. ④ 해군 함정에 도열한 장병들. 칭다오 로이터·AP=연합뉴스

23일 오후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 앞바다. 중앙군사위 주석을 겸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은 군 통수권자로서 미사일 구축함인 116 선양(瀋陽)호에 승선했다. 중국 해군 창군 60주년을 기념하는 해상 열병식의 하이라이트였다.

중국, 칭다오서 대규모 해상 열병식

열병 개시를 알리는 후 주석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창정(長征)6호를 비롯한 전략 핵잠수함과 구축함·호위함·상륙함 등 25척의 군함이 파도를 가르며 등장했다. 하늘에선 중국이 자체 개발한 젠(殲)전투기 등 31대의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공중을 누볐다.

양복 차림의 후 주석은 큰 소리로 “퉁즈먼하오(同志們好: 동지들 안녕하세요)” “퉁즈먼 신쿠러(同志們, 辛苦了: 동지들 고생 많습니다)”라며 장병들을 격려했다. 천안문 광장의 인민해방군 열병식을 칭다오 앞바다로 옮겨놓은 듯했다. 후 주석의 모습은 1984년 10월 천안문 광장에서 군사 퍼레이드를 주도하던 덩샤오핑(鄧小平) 당시 중앙군사위 주석을 연상케 했다. 덩은 왕별이 달린 군모를 쓴 채 오척 단신에서 하늘을 찌르는 듯한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잠자는 거인’이 깨어났다는 인상을 국내외에 각인시킨 장면이었다.

중국 해군이 115년 만의 부활을 선언했다. 아편전쟁(1840년)과 청일전쟁(1894년)에서 영국·일본에 당했던 치욕을 씻어내고 ‘해양 강국’으로 부활하고 있다. 해상 패권은 강대국의 흥망을 좌우하는 변수다. 에스파냐(스페인)·영국·미국이 그랬다.

중국은 1894년 청일전쟁 뒤 동아시아의 해상 패권을 일본에 빼앗겼다. 이홍장(李鴻章)의 주도로 만들어진 북양(北洋)함대는 황해해전에서 궤멸됐다. 이후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중국 대륙을 유린했다. 그래서 일본 해군은 중국의 숙적이다. 리샤오빙(李小兵)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학 교수는 인터넷 매체인 둬웨이왕(多維網)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군부는 이번 행사를 통해 일본을 향해 경고와 징벌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북양함대의 첫 근거지가 바로 산둥성 웨이하이웨이(威海衛)이기 때문이다. 95년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해상 검열을 한 곳도 황해였다.
 
일본은 대표단만 파견, 군함은 안 보내
칭다오 해상 열병식 현장 주변에서는 미묘한 기류가 감지됐다. 중·일의 물밑 신경전이었다. 양국은 이날 행사에 일본 군함 파견을 놓고 갈등을 겪었다. 동아시아 국가 중 대표단만 보내고 군함을 파견하지 않은 것은 일본 해군이 유일했다. 중국 측에서는 “일본이 군사 기밀 누설을 우려해 파견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흘렸다. 반면 일본 쪽에선 “중국이 처음부터 정식으로 초청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고 일본 언론인이 전했다.

이 행사를 전후해 아소 다로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헌화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인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기자와 함께 있던 중국 정부 관계자는 “우리가 조만간 항공모함을 만든다면 댜오위다오(釣魚島)함이라고 이름 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오위다오는 중·일이 영유권 갈등을 빚고 있는 동중국해의 조그만 섬이다.

후 주석은 이날 행사 때 러시아 태평양함대, 미국 7함대에서 파견된 구축함을 사열했다. 인도·프랑스·호주와 한국 등 14개국에서 보낸 21척의 함정도 도열했다. 중국 해군이 해상 열병식에 외국 군함을 초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해상 강국의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 해군은 이제 연안(沿岸)을 벗어나 원양(遠洋)으로 뻗어나고 있다. 중국은 2002년 후진타오 집권 이후 ‘대양해군’ 건설에 박차를 가해왔다. 마오쩌둥의 수세적인 연안방어 전략,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키운다) 정책을 대신한 것이다. 덩이 집권하던 85년 해군 출신의 류화칭(劉華淸)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은 ‘적극적인 근해방어전략’을 수립했다. 근해의 개념을 ‘일본 규슈-오키나와-대만-필리핀’ 라인의 바깥으로 넓혀 작전 범위로 삼은 것이었다. 국방 예산 확대와 함께 해군력도 빠르게 강화됐다. 항공모함 건조 계획은 이미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량광례(梁光烈) 국방부장은 지난달 “강대국 중 항모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국을 방문한 하마다 야스카즈 일본 방위상과 만난 자리에서였다. 중국 해군의 ‘가상적’이 누구인지 짐작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중국은 2015년까지 3만∼4만t급 중형 항모 2척을 건조하고 2020년 이후 6만t급 핵추진 항모 2척을 건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뿐 아니다. 우성리(吳勝利) 중국 해군사령관은 최근 “해군의 장거리 작전을 위해 차세대 함정과 전투기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 대륙에서 수천㎞ 떨어진 해역에서 기동훈련을 실시하고 수개월에 걸친 핵잠수함의 잠항 훈련도 매년 실시할 방침이다. 해상 패권을 겨냥한 실전 훈련도 잇따르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미 함정들과 마찰이 빈번한 것도 그 때문이다.

역사상 중국은 송(宋)·원(元)까지 정크 선단을 이용해 ‘해상 실크로드’를 장악한 해상 강국이었다. 그러나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1371년 연해 주민의 출해(出海)를 금지했다. 3대 황제인 영락제의 지시로 일곱 차례 단행된 정화(鄭和)의 ‘남해 대원정’도 300여 년간의 해금(海禁) 정책을 바꾸지 못했다. 반면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서양의 선진기술을 수용해 해군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중국 명분은 안정적인 해상 무역로 확보
국공 내전 뒤 중국 대륙을 차지한 공산정권은 해군 현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건국 선언도 하기 전인 49년 4월 23일 장쑤(江蘇)성 타이저우(泰州)에서 해군을 창설했다. 하지만 전력은 미미했다. 마오쩌둥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제해권(制海權)의 중요성을 또 한 번 통감했다. 중국의 바닷길이 미 해군에 의해 철저히 봉쇄돼 남의 땅이 된 홍콩·마카오를 통해 전략 물자를 들여와야 했다. 79년 미·중 양국이 수교했지만 미국은 지금도 중국의 대양 진출을 견제하고 있다. 2001년 4월 하이난(海南)성 주변 남중국해 상공에서 발생한 미국 첩보기와 중국 전투기의 공중 충돌 사건은 이런 긴장 기류를 보여준 사례다.

중국이 해군력 증강에 매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홍콩의 군사 전문가 쑹샤오쥔(宋曉軍)은 “중국은 에너지·천연자원을 수입에 많이 의존하고 제품 수출을 위해 안정적인 해상로 확보 필요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바다를 통해 수입하는 원유는 전체 물량의 95%나 된다. 중국은 또 세계 2위의 수출 대국이다.

문제는 중국의 해군력 강화가 동아시아의 군비 경쟁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는 일본을 겨냥하나 중국의 최종 경쟁 상대는 미국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동아시아 해상 패권을 둘러싼 것이다. 21일 산둥성 칭다오 베이하이빈관에서는 29개국 해군 대표들이 모여 ‘조화로운 해양’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우성리 해군사령관은 “테러·밀수·납치·해적·극단주의세력 등이 창궐하는 현실에서 각국 해군이 일치단결해 교류를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각국 대표들은 군비경쟁을 우려하고 중국 위협론을 제기했다. 게리 러프헤드 미국 해군 작전사령관은 중국의 항공모함 건조 추진에 대해 “중국의 의도가 불투명하다면 역내 국가들의 우려를 키울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군사전문가인 존 파이크도 “중국이 항공모함을 건조할 경우 한국과 미국·일본·인도 등과 해상에서 충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함정의 공개 행사를 둘러본 일본 해상자위대 관계자는 “중국의 해군 장비가 대폭 현대화됐다. 중국의 군비 증강 추세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우려했다.

동아시아 바다에는 100여 년 전과 같은 긴장 기류가 흐른다. 특히 일본의 긴장과 초조감은 고조되고 있다. 만일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중국과 미·일이 충돌한다면 남북한은 후폭풍에서 자유롭지 않다. 칭다오 행사에 참석한 한국 해군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 주장하는 조화로운 해양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우리의 자위 능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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