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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도 준치’…맛보니 이유를 알겠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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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호 15면

“썩어도 준치”라 했다. 준치를 평생 한 번도 못 본 사람도 이 말은 한번쯤 들었을 것이다. 낡고 헐어도 가치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과연 썩은 준치를 먹을 수 있을까. 있다. 준치는 가까운 바다치고는 상당히 깊은, 수심 30∼150m 지점에서 산다. 높은 수압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살이 단단해진다. 몸에 상처를 입거나, 심지어는 죽은 뒤에도 세균이 쉽게 침투하지 못한다. 그래서 잘 썩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썩어도 준치’라기보다 ‘썩지 않으니까 준치’라고 할 만하다. 잡은 지 꽤 오래됐다면 날로 먹어선 안 되지만 물에 잘 씻어 불에 구워 먹는 것은 가능할 정도다.

박태균의 식품이야기

준치는 청어목에 속하는 흰살 생선이다. 밴댕이와 닮았으나 몸집이 더 크다. 몸은 옆으로 편평하며 크기는 50㎝가량. 영양적으론(100g당) 단백질(20g)·칼슘(78㎎)·칼륨(280㎎)·비타민A 등이 풍부하다. 흰살 생선치고는 지방이 꽤 많은(4.7g) 편이다. 투병 후 회복 중인 사람이나 몸이 허약한 노인·어린이에게 준치 음식을 권하는 것은 질 좋은 단백질이 풍부해서다.

준치는 6월께 잡은 것이 맛이 최고다. 대개 음력 5월 5일 단오 즈음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는 단옷날 준치를 즐겨 들었다. 가시를 빼고 살만 발라 만든 둥근 완자를 맑은 장국에 넣어 끓인 준칫국, 준치살로 빚은 준치 만두 등은 제호탕·수리취절편 등과 함께 대표적인 단오 절식이다.

소금에 절여 준치 자반을 만들어 먹어도 맛이 기막히다. 또 가시를 발라 회로 먹거나 구이·조림·찜 등 다양한 조리에 이용할 수 있다. 『두산백과사전』엔 ‘생선 중에 가장 맛있다’고 단정적으로 기술돼 있다. 진어(眞魚) 또는 준어(俊魚)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절정의 맛 덕분이다.

반면 먹기 고약하기로도 생선 중에 준치만한 것이 드물다. 맛있다고 먹으면 가시가 목에 덜컥 걸린다. 조선 시대엔 권력·재력·명예에 집착하는 친지에게 선물로 준치를 보내 이를 경계했다. 지나치게 탐하면 불행이 닥친다는 경고였다. 조선 시대 최고의 고조리서인 『규합총서』엔 “준치를 토막 내 그 조각을 도마에 세우고 허리를 꺾어 모시 수건으로 두 끝을 누르면 가는 뼈가 수건 밖으로 빠져나온다. 이를 하나씩 뽑으면 된다”고 준치의 가시 제거법까지 쓰여 있다.

“맛 좋은 준치는 가시가 많다”고 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뜻이다. 기막힌 맛이 호(好), 무수한 가시가 마(魔)인 셈이다. 중국 송나라의 문인 유연재는 ‘시어다골(<9C23>魚多骨)’이라 했다. 세상살이에 장밋빛이 있으면 잿빛도 있다는 것을 빗댄 표현이다. 여기서 시어는 준치다. 제철인 봄~초여름(4∼7월) 기간이 지나면 완전히 사라졌다가 이듬해 다시 나타나는, 물러갈 때를 아는 생선으로 여겨졌다.

전해 오는 민담에 따르면 원래 준치엔 가시가 없었다고 한다. 가시가 없고 맛이 뛰어나 씨가 마를 정도가 되자 이를 불쌍히 여긴 용왕이 바다에 사는 생선들에게 가시를 하나씩 빼내 준치 몸에 꽂아주라고 명령했다는 것이다. 이제 충분한데도 물고기들은 가시 나눠 주기를 멈추지 않았다. 달아나는 준치의 꼬리를 따라가면서까지 가시를 계속 꽂았다. 결국 준치는 꼬리 부위까지 가시가 박힌 가시생선이 됐다.

이런 전설은 시로도 형상화됐다. 시인 백석은 ‘준치 가시’라는 시에서 “준치를 먹을 때엔 나물지 말자, 가시가 많다고 나물지 말자, 크고 작은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인 준치 가시를 나물지 말자”고 읊었다.

준치는 그물에서 건지는 즉시 죽는다.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것도 이런 이유다. 제철에 잠깐 대형 수산시장에서나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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