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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신부’의 치명적 사랑, 죄와 구원을 넘나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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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바이러스 백신 실험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피를 수혈받고 흡혈귀가 된 신부 상현(송강호). 그는 친구의 아내 태주(김옥빈)와 치명적이고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전라의 베드신을 위해 송강호는 10㎏이나 몸무게를 줄였다. [모호필름 제공]

박찬욱은 칸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 다음달 13일 개막하는 제62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인 박감독의 신작 ‘박쥐’가 24일 공개됐다. 2004년 칸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던 ‘올드보이’에 이은 두번째 도전작이다. 박감독 스스로 “내 생애 최고 걸작” “내 자신이 투영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 칭한 영화다.

‘박쥐’는 사고로 뱀파이어가 된 신부가 치명적 사랑에 빠지는, 뱀파이어 소재 치정 멜로다.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빼고 나면 박찬욱이 선보이는 첫번째 본격 멜로이자, 출세작 ‘공동경비구역 JSA’(2000)때부터 송강호·신하균 등과 꿈꾸어온 10여년에 걸친 프로젝트의 완성이다. 알려진 대로 박감독은 ‘JSA’ 이후 ‘복수’ 시리즈에 몰두했고, 2004년 옴니버스영화 ‘쓰리 몬스터’를 통해 뱀파이어 캐릭터(염정아 분)를 선보인 바 있다.

‘박쥐’는 ‘친절한 금자씨’ 이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로 잠시 숨을 골랐던 박찬욱이 여전히 문제적인 감독임을 입증한다. 폭발하는 영화적 이미지에 죄와 구원, 유혹과 금기 등 실존적이거나 종교적인 주제를 박찬욱식 유머와 특유의 잔혹미학에 녹여내, 박찬욱 월드의 건재를 과시한다. 지금까지 박찬욱 영화세계를 집약한 영화로도 볼 수 있다. 신부 상현(송강호)은 바이러스 백신 실험 중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받고 뱀파이어가 된다. 친구이자 병약한 마마보이 강우(신하균)의 아내 태주(김옥빈)와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 그는, 태주를 강우에게서 구해내려 한다.

‘박쥐’는 유혹과 금기에 대한 장르인 뱀파이어 영화의 전통을 따르되, 뱀파이어에게 인간(그것도 신부)의 얼굴을 씌워 ‘새로운 한국형 뱀파이어물’로 탄생했다. 생존을 위해 살인하는 뱀파이어 상현은, 박찬욱이 즐겨다루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인간의 전형.

‘JSA’ ‘복수는 나의 것’에 이어 세번째로 박찬욱의 남자가 된 송강호가 애초의 우려를 깨고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김옥빈의 파격적이고 광적인 연기, 김해숙(강우의 엄마)과 신하균의 신들린 듯한 연기 앙상불 역시 절묘하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유머러스한 분위기 또한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심각한 상황을 어처구니없이 가볍게 만드는 ‘깨는’ 대사, 때때로 오버하는 연극풍 연기의 결과다.

물론 이 영화의 가장 큰 매혹은 스타일리스트 박찬욱이 창조한 이미지와 영화적 세공술. 붉게 치솟는 피의 유혹적 이미지, 맨발의 태주에게 상현이 자기 신발을 신겨주는 장면, 뱀파이어가 돼 롤러코스터 타듯 날아다니는 탈주의 이미지 등은 ‘영화적 영화’의 쾌감을 배가시킨다.

원작은 에밀 졸라의 첫번째 소설 ‘테레즈 라캥’. 감독은 “가톨릭 사제의 정체성, 뱀파이어, 에밀 졸라의 결합물”이라고 자신의 영화를 소개한 바 있다. 30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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