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로잡은 테마]호랑이상징 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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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해가 바뀔 때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십이지 (十二支) 띠동물의 상징성을 밝히는 학술강연회를 갖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동물원에도 자주 가게 되고 관련자료도 모으기 시작했다.

비록 동물학자는 아니지만 그 동물의 생리학적 특징을 알아야 우리 민속에 담겨있는 동물의 해석체계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료들 중에서 호랑이 관련자료의 양이 열두띠 동물 가운데 유난히 많았다.

과연 '호랑이 나라' 다웠다.

이렇게 많은 자료 턱택에 호랑이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0년전 범띠해부터였다.

균형잡힌 신체구조, 느리면서도 순간적으로 빠른 몸놀림, 빼어난 기품 때문에 호랑이는 우리 민속에서 '산군자 (山君子)' '산신령 (山神靈)' '산중영웅 (山中英雄)' 으로 불리면서 한반도 전체의 보편적 신앙으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마을 산신제나 사찰의 산신도에도 등장하는 호랑이는 좋으면서 싫고, 무서우면서 우러름의 대상이다.

이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그 당시의 생활문화나 종교.관념들을 표현하기 위해 동물상징 (動物象徵) 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바위그림.동굴벽화를 비롯해 동물형 토우와 토기, 고분벽화등에 등장하는 수많은 호랑이에는 반드시 그 당시 사람들이 나타내고자 했던 의미와 상징이 숨어 있다.

그렇지만 이들 고대 유물과 유적에서 나타나는 많은 호랑이의 모습은 현재의 사고만으로는 그 온전한 뜻을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한국문화에 등장하는 호랑이의 뜻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문화적.사상적 배경을 이해함은 물론 우리 조상들이 호랑이의 외형이나 행태 (行態) 등에 어떤 상징성과 암시성을 부여했는지 알아야 한다.

이 때문에 내가 손댄 호랑이 상징 연구는 한마디로 총체적이어야만 했다.

호랑이의 생물학적 분석체계뿐 아니라 그 생물학적 특성을 각 민족.사회의 문화적 맥락에 따라 이해되고 해석되는 민속모형에 대한 연구도 수반되어야 했다.

나아가 호랑이의 민속소 (民俗素) 를 분석하기 위해 고고유물과 유적.벽화.문헌기록 등을 통한 통시적인 연구뿐 아니라 사회역사적으로 누적된 공시적인 연구도 필요했다.

정초가 되면 누구나 올해의 띠동물의 상징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찾아서 새해의 운수를 예점 (豫占) 하려고 한다.

이는 해가 바뀔 때마다 어떤 새로운 기대를 걸어 보려는 인지상정의 표현일 것이다.

나의 연구가 요즘처럼 세상이 불안할 때 한점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갖는다.

천진기<문화재硏·민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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