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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샛별] 김꽃비 “유명해지기 싫어요, 그게 감독님과 닮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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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약속보다 10분 쯤 늦게, 그는 숨이 턱에 차 나타났다. 아침에 일어나 직접 화장을 하고 경기도 부천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왔다고 했다.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매니저도 없어요.” 실제 길거리에서 숱하게 마주칠 법한 평범한 여대생 모습이다(그는 현재 상명대 연극과 휴학중이다).

영화 ‘똥파리’에서 상훈(양익준)에게 한 치도 밀리지 않던 막강 포스의 소녀 연희는 어디에도 없다. 세상에 대한 분노를 삭여내던 영화 속 허스키한 저음 대신 까르르 고음이 터졌다.

양익준 감독은 그를 캐스팅하며 “어둡지만, 웃을 땐 활짝 피는 배우를 찾았다”고 했다. “영화속 저음요? 남자 친구들한테 ‘야’하고 막 대할 때 그 목소리를 낸 거예요”라고 한다.

#감독과 ‘맞욕’하며 연기

‘똥파리’에서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달리 실제 김꽃비는 밝고 평범했다.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오가는 그는 “회사로 치면 상업영화는 깔끔한 대기업, 독립영화는 자유분방한 작은 디자인 기획사같다”며 “둘 다 재미있다”고 했다. [김경빈 기자]

김꽃비(25). ‘꽃이 비처럼 내린다’는 예쁜 이름은 엄마가 지었다. 무명의 독립영화 배우들이 강렬한 연기 앙상블을 선보이는 ‘똥파리’에서 그의 존재감은 단연 압도적이다. 생애 첫 연기상을, 3월 스페인 ‘라스팔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으로 받았다. 영화 데뷔는 2003년 ‘질투는 나의 힘’. 2006년 ‘삼거리극장’의 주인공 소담 역으로 그녀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똥파리’의 출연은 독립영화 ‘이슬후’에서 그를 본 양감독의 제의로 이뤄졌다. “욕이 많지만 어려운 역할이라고는 생각안했어요. 폭력적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SBS ‘긴급출동 SOS’ 같은 프로를 챙겨봤구요. 욕을 입에 붙이려고 감독님하고 ‘맞욕’하는 비법도 썼지요(웃음).” 가정폭력의 현장인 연희네 집은 실제 양감독의 집. 집 촬영분을 일주일에 몰아찍느라 일주일 내내 두들겨 맞고, 악쓰고, 울부짓다 탈진했던 것을 가장 힘들었던 대목으로 꼽았다.

배우 출신 양감독의 ‘배우중심 연기지도’는 호연을 끌어내는 무기였다. “무명이거나 어리거나 작은 역할이면, 현장에서 연기할 때 배려나 주목을 못받거든요. ‘그거 좀 이상하잖아’ 이렇게 한두마디 듣고나면 위축되고요. 양 감독님은 배우을 해봤기에 배우에게 자신감,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요. 일단 믿고 맡기니, 주·조연을 망라해 똑같은 배우들인데도 전혀 다른 연기가 나온 거죠.”

#연예인 아니라 배우

말하는 모양새가 야무지다. 연기에 대한 강한 자의식도 느껴졌다. “저는 감독님이랑 생각이 비슷했어요. 영화 얘기보다 살아가는 얘기를 많이 했고, 그래서 리허설 많이 안하고도 자연스런 연기가 나온 것 같아요. 닮은점? 유명해지기 싫은 것? 성공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그냥 유명해서 필요한 배우는 싫단 뜻이예요.”

인터뷰 내내 배우란 말을 많이 했다. 외모를 자평하게 하자 “연예인처럼 예쁘진 않죠. 전 연예인이 아니고 배우니까요. 인간 김꽃비는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지만, 배우로서는 그런 생각 안해요”란 당찬 답이 돌아왔다.

“기획사 전속 제의도 있었지만 회사가 맞는 배우는 아닌 것 같아 거절했다”는 그는 지난해 2월 ‘똥파리’ 이후 5편의 독립영화를 찍었다. 상업영화 틈틈이 독립영화를 다작하는 배우다. 물론 돈하곤 거리가 멀다. “제 돈 쓰며 찍은 작품도 있는 걸요. 일종의 예술가 마인드랄까요. 다른 일 해서 돈을 벌더라도 작품은 아무거나 해서는 안된다고 믿어요.”

양성희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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