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삶은 은혜다, 감사하자 … 이것이 우리의 실천 덕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전북 익산에서 만난 원불교 이성택 교정원장은 “마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경계가 더 정확하게 보인다. 그런 경계를 한번 넘고 나면 다음 경계는 더 쉬워진다”고 말했다.

원불교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4월 28일)을 맞아 20일 전북 익산의 원불교 총부를 찾았다. 원광대 맞은 편에 자리한 총부는 축제 분위기였다. 집무실에서 원불교의 교산 이성택 교정원장을 만났다. 조계종 총무원장에 해당하는 교정원장은 원불교의 행정수반이다. 그에게 ‘원불교 100년’과 ‘마음공부’를 물었다.

이 교정원장은 “대각개교절은 쉽게 말해 ‘원불교 열린 날’”이라고 했다. 1916년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1891∼1943, 속명 박중빈)가 대각(깨달음)을 이룬 날이기 때문이다. “이제 원불교 100년을 6년 앞두고 있다. 종교에는 세 가지 발전 단계가 있다. 첫째 창업기, 둘째 제도 정착기, 셋째 문화 창조기다. 종교학자들은 원불교가 제도 정착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본다. 이제는 문화 창조기로 진입할 때다. 그게 원불교의 과제다.”

-새로운 종교는 창시자가 돌아가시면 쪼개지는 경우가 많았다. 원불교는 어떻게 분열을 피할 수 있었나.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신흥종교뿐 아니라 기존 종교도 마찬가지다. 교회를 아무리 잘 이루어도 자녀들에게 세습하는 일이 꽤 있지 않나. 원불교에는 그게 없다. 우리는 ‘공의(公議)’를 우선한다.”

-교단의 시스템이 잘 꾸려졌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종법사(원불교 최고지도자)가 양위를 해도 교단은 분열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종법사 선출 때도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참여하는 선출 시스템이 꾸려져 있다.”

-타 종교는 선거 때마다 몸살을 앓는다. 원불교의 종법사 선출 때는 ‘선거 운동’이 없나.

“그런 게 없다. 선거 운동을 하면 교도들이 싫어한다. 오히려 점수가 깎이는 분위기다. 그래서 ‘선거 운동’은 아예 하지 않는 풍토다.”

소태산 대종사는 26세 때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11살이나 많은 외숙까지 제자로 삼았다. 연세가 한참 높았던 동네 어르신들도 그를 ‘스승’으로 받들었다. 대종사를 한번이라도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감복했다고 한다. 심지어 일제시대 그의 감시를 담당했던 순사도 나중에는 원불교에 귀의할 정도였다.

-원불교는 제도 정착기를 거쳤다고 했다. 그러니 교단에 위계와 질서가 있다. 만약 젊은 원불교도가 깨달음을 얻는다면 인정을 받을 수 있나.

“대종사 당대에 그런 물음이 있었다. ‘당대의 종법사보다 법위가 더 성한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오리까?’라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대종사께선 ‘대중의 공의에 따르라’고 하셨다. 대중의 기운을 받지 않으면 원불교에선 설 수가 없다.”

이 교정원장은 지난 시대는 신권(神權)의 시대, 천권(天權)의 시대라고 했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는 인권(人權)의 시대다. 대종사께선 그것도 내다보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제 창교 100년을 앞두고 있다. 현재 원불교의 고민은 뭔가.

“기독교 성탄절에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켠다. 불교 석가탄신일에는 연등을 켠다. 이게 모두 ‘불의 문화’다. 종교적 깨달음은 결국 ‘밝은 빛’이기 때문이다. 원불교도 문화가 필요하다. 불의 문화, 빛의 문화를 활용한 원불교의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그게 요즘 나의 화두다.”

-불교는 자비, 기독교는 사랑을 말한다. 원불교는 어떤가.

“은혜와 감사다. 이게 원불교의 실천적, 상징적 단어다. 대각개교절의 주제가 ‘모두가 은혜입니다’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리자’이다. 일상에서 교도들이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끝으로 원불교 교도들의 장점을 하나 꼽는다면.

“우리 교도들은 배타성이 없다. 우린 생각과 지향이 일치하면 굳이 원불교도가 아니어도 같은 길을 간다고 본다. 그만큼 열려 있다는 얘기다. 이건 중요한 점이다. 지금은 산업사회가 아니라 지식정보 사회다. 산업사회에선 강한 신념으로 사업에 성공한 예가 많았다. 이젠 세상의 틀이 바뀌었다. 지식정보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지금은 유연성, 즉 열려 있음이 아주 중요하다.”

익산(전북) 글·사진=백성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