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보는 세상] 변신할 수 있다면 넌 무엇이 되고 싶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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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이가 된 스탠리
원제 Flat Stanley
제프 브라운 글, 토미 웅게러 그림
시공주니어, 8000쪽,4000원

곰이 되고 싶어요
원제 L’enfant qui voulait etre un ours
벤트 할레우 원작, 스테판 프라티니 글, 달리, 30쪽,9000원

네버랜드 미아
김기정 글, 이상규 그림, 푸른숲, 124쪽,7500원

최면반지의 비밀(신나는 파라락 극장 시리즈1)
원제 The Adventure of Captain Underpants
대브 필키 글·그림, 주니어김영사, 126쪽, 6000원

터널
원제 The Tunnel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논장, 24쪽, 8000원

어릴 때 가장 많이 받는 구태의연한 질문 중 하나가 이거다.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

우리 집에 사는 애 하나는 어릴 때 이렇게 대답했다. “냉장고.” 그러더니 조금 후엔 이렇게 변했다. “옥수수.” 물론 집에서 키우는 애가 그렇게 변신한다면 문제가 많을 것이다. 내가 평소에 애를 구박해 애가 사라졌다고 경찰과 구청 가정복지과에서 조사를 나올 것이고, 냉장고가 두 대인 것으로 보아 애를 팔아 2004년형 초절전 냉장고를 장만했다고 조서를 꾸미게 될지 모른다. 다행히도 우리집 아이는 아직 변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그냥 사람으로 살고 있다.

곤충이 사람보다 위대한 점은 바로 변신의 귀재라는 것이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렇게 변신하는 걸 보면 곤충이 지구를 지배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그렇게 변신하는 게 조금, 아니 많이, 실은 끔찍히 어렵다. 그러다 보니 변신의 꿈을 문학으로 해결해왔다. 변신의 소재는 아주 오래 전부터 민담과 각 나라 신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라. 변신 없이는 이야기가 안 된다)에서부터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와 스파이더맨과 포케몬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줄기차게 써먹었는데도 아직도 여전히 매력적인 코드다. 사람이 동물로 변하기도 하고 동물이 사람으로 변하기도 한다. 신체 일부분만 변하기도 하고 당나귀가 돌이 되기도 하고 갑자기 초능력자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가지가지 방법의 변신 스토리가 사람들을 매혹시켜왔다.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도 예외는 아니다. 작은 어린이들은 큰 모습의 어른을 보고 열등감을 갖는다. 그리하여 나도 어서 커서 저런 큰 어른이 돼야지 하는 생각을 품게 되고, 자신이 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몸집이 커지면 가능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왜소하고 나약한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모습을 꿈꾸는 건 동화의 단골 소재다.

변신은 때론 황홀감이고 때로는 당혹감이며 가끔은 우스개가 된다.

유쾌한 변신부터 살펴볼까. 『신나는 파라락 극장 시리즈』는 ‘빤스맨’으로 변신한 교장 선생님이 중요 등장인물이다. 깜씨와 꼬불이라는 엄청난 장난꾸러기를 학교 안에 두고 있어 늘 괴로운 교장선생님은 변신을 통해 엄청난 일들을 해치운다. 물론 변신의 영웅들은 그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가 없어 그들(원더우먼·배트맨·수퍼맨 등) 또한 너무 늙어 짚고 있던 지팡이를 휘두르기도 힘든 지경이므로 빤스맨의 등장은 매우 중요하다. 이 세상의 진실과 정의, 그리고 100% 순면팬티를 위해 싸울 영웅이 지구상에 또 있을 리 만무하다. 근엄하기 짝이 없는 교장선생님이 강력 고무줄을 넣은 ‘빤쓰’와 빨간 망토만 걸친 빤쓰맨으로 변신한다는 건 아무리 장마가 와도 웃음이 터져나오는 발상이다.

그런가하면 『네버랜드 미아』의 이야기처럼 슬픈 변신도 있다. 어느 날 우연히 해바라기빛 버스를 타게 된 미아는 진짜 푸른 용이 청룡열차 노릇을 하며 날아다니는 놀이공원 네버랜드에 가게된다. 함께 놀던 친구들이 나비가 되어 버린다. 알고 보니 그 아이들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어릴 때 죽은 아이들이다. 실컷 놀아보지도 못하고 죽은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네버랜드에서 마음껏 놀아보고 그러고는 나비로 변해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나비가 그렇게 슬퍼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원치 않는 변신도 있기 마련이다. 『납작이가 된 스탠리』의 주인공 스탠리는 게시판에 눌려 몸통의 두께가 1.2㎝가 된다. 하지만 스탠리는 자신의 변신에 잘 적응한다. 생각보다 유리한 점도 꽤 있어 연처럼 하늘을 날기도 해보고 우편봉투 안에 들어가 싼 요금으로 해외여행을 하기도 한다. 벽에 붙어있다가 미술관 도둑도 잡는다. 그런 스탠리를 괴롭히는 것은 생각없는 주위 사람들의 입방아다. 특이한 생김새를 이유로 그 사람을 싫어한다고 대놓고 떠드는 몰지각한 사람들 때문에 스탠리는 괴로워한다. 영리한 동생 아서는 공에 바람을 넣는 펌프로 형을 부풀려준다. 변신을 두 번 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스탠리는 다시 행복해한다.

변신으로 철드는 경우도 있다. 『터널』에서는 터널로 들어간 못된 오빠가 돌이 되었다가 동생의 눈물과 포옹으로 사람으로 다시 살아난다. 겁많던 여동생도 터널 속에서 내적 변신을 하게 된다. 터널로 들어가기 전의 남매를 표현한 그림과 색, 터널서 나온 후의 색과 형태를 비교해보면 작가가 얼마나 꼼꼼하게 계산해 그림책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는 늘 동물이 사람으로 변하고 싶어하는 변신의 이야기에 도취되어 왔다. 여우며 곰이며 쥐들이 얼마나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던가. 그러나 이제는 그 공식이 깨어졌다. 곰만도 못한 사람들 때문이다. 『곰이 되고 싶어요』를 읽어보면 우리가 사람임이 부끄러워진다. 사람이 곰이 되고 싶어해 마침내 그리 되는 새로운 신화 앞에서 우리는 겸허해지고 만다.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변신해야 마땅한가. 우리의 어린이들은 어떤 변신을 꿈꾸는가. 너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내게 지금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난 커서 내 맘대로 하는 심술쟁이가 될테야.

임정진(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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