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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주름잡는 영어파워…인터넷등 막강한 영향력 행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지난 6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유럽연합 (EU) 국제회의 기자회견장에선 영어만으로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프랑스어.독일어 등을 사용하는 유럽 기자들이 "유럽에서 유럽의 사안을 논의하는데 왜 하필 영어만 써야 되느냐" 며 강력히 항의했으나 다른 기자들에 의해 묵살된 채 기자회견은 줄곧 영어로 진행됐다.

이는 오늘날 영어의 강세 (强勢) 를 단도직입적으로 보여주는 아주 사소한 예에 불과하다.

영어가 이처럼 지구촌 사람들의 공용어로 자리잡은 지는 매우 오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슈퍼 파워' 로 떠오른 미국의 막강한 경제.정치력과 문화역량이 전세계를 휩쓸면서 영어는 이제 '세계어' 로서 그 위상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영어의 상승세는 이제 전체 정보량의 90% 이상이 영어로 된 인터넷 환경의 급속한 전파, 외교.군사.경제 등 전분야에 걸친 미국의 독주에 힘입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영어의 확산은 지구촌 경제.문화 교류의 가교로서 긍정적인 측면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소수어의 소멸이라는 문화생태환경의 파괴를 낳기도 한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UNESCO)가 지난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의사소통에 사용되는 언어는 5천~6천종. 이 가운데 3천~4천종 정도가 소멸위기에 놓여 있으며 한해에 20~30개 언어가 생명력을 잃고 죽어간다.

영어의 확산으로 인한 소수어의 소멸이 가장 급속히 이뤄지고 있는 지역은 호주. 원주민들의 2백50여개 언어는 이제 손에 꼽을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원주민들이 유럽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이들의 언어는 영어와 뒤섞인 '기형' 적인 형태로 변형됐다.

특히 학교교육을 통한 보급기회를 전혀 갖지 못한 이들 원주민 언어는 급격히 소멸되고 있다.

현재 호주 공식언어는 영어며 원주민 언어는 1백50여개가 이미 소멸됐고 70여종은 소멸과정에 있다.

영어세 (英語勢) 는 아시아에서도 중요한 언어로 자리를 잡았다.

현재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는 아시아인의 숫자는 3억5천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콩.싱가포르.필리핀 등에서는 이미 영어가 민족어에 앞서 제1언어로 자리잡았다.

정치.경제의 중요한 자리는 '영어계' 가 장악하고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세계 2위의 인구대국 인도조차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영어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인도는 힌두.벵골어 계통의 언어 16개와 영어를 공용어로 삼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국을 통틀어 사용될 수 있는 언어로는 영어가 가장 적합한 상황이다.

따라서 인도 상류층을 중심으로 영어가 유력한 언어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한편 영어세의 일방적인 독주에 대한 견제 움직임도 만만찮다.

지난달 14일부터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전세계 프랑스어 사용 49개 국가 정상회의에서는 영어세의 급격한 확산에 대응해 프랑스어 사용을 촉진하기 위한 기구를 개설키로 하고 전 유엔사무총장 부르토스 부르토스 갈리를 초대 사무총장에 지명했다.

김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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