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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영일기]박병재 현대자동차 대표이사'조용한 혁명'으로 내실 다져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IMF 구제금융의 충격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던 12월12일, 해외 출장길에 오른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들은 대개가 선진국이고 경제가 건전한데 유독 우리만이 국가경제가 부도 위기 속에 있다는 사실, 그리하여 평소에는 의욕적으로 자주 방문했던 자동차 수출거래선을 착잡한 마음으로 찾아간다는 사살이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나는 터키 이스탄불행 기내에서 경제위기의 실상을 금새 실감할 수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80~90% 좌석이 차던 것이 이날은 20%밖에 안됐던 것이다.

이같이 피부로 느끼는 실체험이야 그렇다치고 출장중에 간간히 들쳐본 외국 신문에 게재된 한국 관련 기사에는 'Xenophobia (외국인 혐오증)' 라는 단어가 크게 활자회되어 있었다.

요컨대 그들의 시각은 "한국이 모든 외국에 반감을 갖고 있다" 는 것이었다.

IMF 구제금융 이후 우리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벌이기 시작한 절약운동 캠페인, 특히 외제상품 배격운동을 그들은 그런 반감의 표출로 해석하고 있었으며 이렇게 비춰지다 보니 그들이 우리에게 돈 빌려주는 것도 꺼리는 것이었다.

내핍만을 너무 강요하는 분위기가 팽배, 무작정 안쓰기 운동으로 인식되면서 국내의 전반적인 산업을 마비시키는 결과가 우려되고 있어 우리가 하루빨리 되찾고자 하는 경제 활성화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물론 절약운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거품을 벗겨낸 정상적인 소비활동이 이루어져야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자립경제의 노력은 그것이 아무리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될 수 있는 한 밖으로 떠들어대지 말고 조용하게 내부적으로 내실을 다지면서 달성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시말해 요즘처럼 심각한 위기상황일수록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겸허하고 내실있는 '조용한 혁명' 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 현재 우리나라는 스스로 의 경쟁력을 약화시킨 노동조합 등 모두에게 지금의 위기상황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특히 각종 규제를 통해 경제 주체 위에 군림하면서도 정작 정책적인 오류와 시행상의 실기 (失機) 를 범했던 정부도 그 책임이 크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각 경제주체들이 과거에 대한 반성의 토대 위에서 자립경제의 노력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묵은 상처가 곪아 터지면서 IMF라는 외과전문의사에게 우리 경제의 환부에 대한 대수술을 부탁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지금 우리는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중증을 앓고 있는 응급환자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병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내 병은 고치기 어렵다' 는 식의 자포자기 속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와 '나는 반드시 낫는다' 는 의지로 치료를 받는 환자는 근본적으로 완쾌율이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잘못된 태도를 고치기 위해서는 환부를 과감히 도려내는 희생과 고통을 각오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박병재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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