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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불 구제작전' 뒷얘기…미국 "한국 구조하라" 긴급 안보회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국이 국가부도라는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지난 24일 미국을 중심으로 1백억달러의 조기자금 지원이 결정되기 전까지 긴박하게 돌아갔던 미 정부의 뒷얘기가 워싱턴 포스트지에 28일 상세한 비화들과 함께 실렸다.

숨가쁘게 돌아갔던 당시 상황을 워싱턴 포스트지의 보도를 중심으로 돌아본다. 편집자

국가 부도위기의 벼랑끝에 섰던 한국경제에 대해 미국을 중심으로 1백억달러의 조기지원이 결정되기까지는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긴박한 막후협상과 타협이 진행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 워싱턴 포스트지는 28일 서울과 워싱턴, 미 재무부와 국제금융기관 사이에서 숨막히게 전개됐던 '한국 구제작전' 의 뒷얘기를 생생하게 전했다.

당초 국제통화기금 (IMF) 은 지난 3일 한국에 대한 5백70억달러 규모의 긴급자금 제공을 발표하면서 한국이 국제금융기관과 외국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IMF프로그램 이행에 대한 한국 정부의 미온적 태도는 신뢰를 주지 못했고 선거기간중에 나온 '재협상 파문' 도 불신을 가중시켰다.

각국 금융기관들은 한국에서 자금을 급속히 거둬들였고 한국채무의 상환기간 연장률은 10~15%에 불과했다.

IMF의 한 관계자는 당시 하루 최고 10억달러의 외국자본이 한국에서 빠져나갔다고 밝혔다.

서울의 주가지수는 연일 최저치를 경신했고 원화가치는 '자유낙하' 하며 한국을 파산직전까지 몰고 갔다.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자 미 정부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 국무부.국방부.국가안보위원회는 한국의 경제불안은 장기간의 정치.사회불안으로 이어져 자칫 북한의 도발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백악관에서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 등이 참석하는 '한국관련 긴급안보회의' 가 열렸고 이들은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앞으로 한국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러나 미 재무부는 여전히 조기 자금지원에 반대하고 있었다.

루빈 장관은 하루 한두차례 임창열 (林昌烈) 경제부총리와 전화통화하며 한국상황을 주시했지만 한국이 당초 약속했던 개혁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지 않는 한 경제회생의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루빈은 林부총리의 50억달러 조기지원 요청도 거절했다.

미 정부를 결정적으로 돌아서게 한 것은 예상밖으로 서울에 진출해 있는 외국 금융기관들의 한국지원 움직임이었다.

이들 금융기관은 이미 지난 10월께부터 한국의 금융위기 가능성을 감지하고, 미국.일본.유럽 등 본사에 한국의 위기상황을 경고하기 시작했다.

이들 금융업체는 한국지원 여부를 논의했으나 의견이 갈렸다.

이미 자국의 금융위기로 여력이 없는 일본 금융기관들은 한국지원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미국.유럽의 대형 금융기관들이 '한국이 지불유예 (모라토리엄)에 빠지는 것보다는 도와주는 편이 낫다' 는 결론을 내리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이달 중순부터 이들은 조심스럽게 한국지원 방안을 모색했으며 이들의 움직임은 미 정부가 한국지원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미 정부는 반발이 예상되는 의회에 "금융기관들도 한국지원을 고려하고 있다" 고 설명할 명분을 얻게 돼 한국의 개혁의지만 확인되면 조기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지난 19일 미 정부는 개혁을 전제로 한 한국조기지원을 결정하고 이날 오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이에 서명했다.

미 정부의 결정을 전달하기 위해 데이비드 립튼 재무차관이 21일 한국에 급파됐다.

이미 한국의 상황은 하루를 넘기기도 어려울 만큼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22일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와 만난 립튼은 한국정부의 개혁의지가 확고함을 확인했다.

金당선자는 "경쟁력이 우선이고 고용안정은 두번째" 라며 개혁의지를 확고히 밝혔다.

한국정부의 의지를 확인한 립튼은 24일 오전 미국의 지원결정을 한국에 전했고 이날 자정 조기지원 결정발표로 숨가쁜 '한국구제작전' 은 막을 내렸다.

뉴욕 = 김동균 특파원·윤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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