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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속의 문화유산]42.<끝>생활속 정체성 재발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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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유네스코가 인류문화유산의 효율적인 보존을 위해 유산 등록을 시작한 것이 지난 75년. 그 전에도 그랬지만 이를 계기로 문화의 고부가가치를 다시금 확인하게 된 세계 각국은 인류유산등록에 혈안이 돼 있다.

예컨대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의 경우 증기기관등 수많은 기계의 발명과 약간이라도 인연이 닿는 지역이면 인류문화유산 등록을 서두르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도 문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난 92년부터 문화체육부 주관으로 매년 각 장르별로 문화의 해를 펼치고 있어 그나마 다행으로 평가받는다.

춤.책.국악.미술.문학등을 거쳐 올해는 '문화유산의 해' 로 지정됐다.

중앙일보가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올해 초부터 연재한 '내 마음속의 문화유산3' 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당초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문화계 인사들이 늘 마음에 품고 있는 문화유산 세가지를 지상감상 형식으로 10여회 게재할 계획이었으나 독자들의 열화같은 반응에 힘입어 1년 연재로 연장, 41회로 대미를 장식하게 됐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로 국내에 문화유산 기행붐을 일으킨 유홍준 영남대교수가 이 시리즈를 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독자들에게는 심상치 않게 받아들여졌다.

그 직후 독자들로부터 언제까지 연재하는냐는 전화가, 뒤늦게 이 시리즈를 접한 이들로부터는 연재가 언제부터 시작됐느냐는 문의가 쏟아졌고 어쩌다 지면사정으로 이 시리즈가 빠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문화부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독자들도 그랬지만 나름대로 문화유산에 높은 식견을 지녔다고 자부하는 인사들이 필자를 자원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필진도 문화계 인사에서 사회학.철학.과학사등 학계와 시인.건축가.풍수전문가.극작가.스님.농부등으로 확대됐으며 문화유산의 지평도 차츰차츰 넓혀져갔다.

'내 마음속의 문화유산3' 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지극히 평범한 것까지도 문화유산으로 끌어안는 필자들의 절절하고도 따뜻한 가슴이었다.

"평범하되 가식없는 미 (美) 와 진실이 들어 있는 것이 참된 아름다움" (유홍준 교수) 이라거나 "살아가다 맘이 체할 때 찾아가면 그 맘의 체를 말끔히 내려주는 곳" (황지우 시인) , "우리 삶의 무대에 배치돼 있는 모든 것이 우리의 생활과 관련이 있는 한, 그리고 그런 것에 한두마디 특별한 설명을 붙일 수 있으면 그것이 전통이고 역사고 문화유산" (안병욱 교수) 이라는 독특하고도 산뜻한 문화유산관 (觀) 을 접하면서 독자들은 아연 긴장하면서 감동했다.

어느 글을 들추어도 문화유산이 거창하거나 화려한 것만이 아님을 알 수 있게 했다.

오히려 투박하면서도 서민적 삶의 질곡이 진하게 느껴지는 유산들이 더욱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음을 보여줬다.

석굴암.한글등 누가 봐도 훌륭함에 의심이 없는 문화유산도 거론됐지만 강신표 교수의 경우 새벽산행과 새벽목욕까지 문화유산의 범주에 포함시켜 상식을 깨는 포용을 보여줬다.

이 시리즈에서는 조혜정 교수가 문화유산에 대한 고정관념에 가장 강력하게 맞섰다.

조교수는 우리의 문화관이 영화로운 과거를 상기시키는 유물 중심이라서 시기적으로는 근대 이전이고 남성중심적이라고 지적하면서 문화유산의 취사선택 기준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런 시각에서 조교수가 내놓은 '내 마음속의 문화유산' 들은 달동네와 골목길등. 약간의 충격을 던졌다.

산꼭대기의 손바닥만한 공간에 온갖 살림살이를 다 갖추고 사는 달동네의 공간활용 지혜를 문화유산화하자는 제안이었다.

산비탈의 구불구불한 논배미, 관상수가 아니라 감나무.살구나무등 과실나무를 주로 심는 시골집의 뜰, 장독대, 돌각담등 필자들이 꼽은 문화유산은 우리 생활과 너무도 가까운 곳에서 우리 마음을 손짓해 부르고 있는 것들이다.

교수직을 버리고 농부의 길을 택한 윤구병씨의 풀이대로 과실나무가 대부분인 시골집 뜰에서 생산문화를 읽을 수 있다면 허름한 시골집도 더욱 살갑게 느껴지지 않을까. 이 시리즈 곳곳에는 필자들 나름대로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요령도 눈에 띈다.

황지우 시인의 경우 우리 문화유산에 거창함이 없다고 탓할 것이 아니라 그만큼 국민을 긍정적으로 지배했던 권력이 크지 않았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조혜정 교수도 큰 것과 위대한 것에 대한 숭상은 우리의 경우 자기소외를 증폭시킬 뿐이라고 강조한다.

가난했던 삶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문화유산 사랑의 지름길이라는 주장이다.

또 고적을 찾을 때는 언제나 터덜터덜 걷는다는 안병욱 교수의 지론도 귀담아 들어봄직하다.

그래야만 단순한 관광에서 끝나지 않고 조상의 체취와 더불어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 윤구병씨는 주변을 살필 때는 앞서 살다간 분들이 남긴 삶의 흔적을 더듬고 아울러 후손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승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것을 권한다.

윤재근 교수와 김덕현 교수는 다같이 자연과 친화력을 쌓을 수 있는 정신을 최고의 문화유산 사랑법으로 꼽는다.

이렇듯 '내 마음속의 문화유산3' 시리즈가 얻은 결실은 문화유산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크게 바꾸었을 뿐 아니라 일반인들이 문화유산에 쉽게 친숙해질 수 있는 요령까지 제시했다는데 있다.

바쁜 가운데서도 옥고를 보내주신 필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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