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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개그맨 노정렬 "10만원으로 7개국 여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개그맨 노정렬 (26)에게 97년은 89일간의 장기 '외유' 로 기억된다.

지난 9월2일 싱가폴경유 항공편으로 인도 캘커타에 도착, 파키스탄 - 이란 - 터키 - 그리스 -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 파리까지. 그것도 제 돈 들인 여행이 아니라 방송출연차 간 것이라면, 그의 '보통사람' 친구들은 입을 쩍 벌린다.

문제는 방송사가 쥐어준 여비가 단돈 10만원이란 점. 그나마 같이 간 대학생 윤희석 (21.연극원 휴학중) 과 나눠써야한다.

잠은 여인숙이나 노숙, 식사는 밀가루를 얇게 부쳐 카레에 찍어 먹는 '로띠' 나 '짜빠띠' 뿐이었는데도 일주일만에 바닥나 버렸다.

이제부터가 볼만하다.

한국서 갖고간 기타와 특유의 '끼' 를 무기로 즉석 거리이벤트를 벌인다.

한나절 노래하고 춤춰 모은 게 우리돈 2백원남짓. 물가싼 인도에서는 적잖은 돈이다.

나중에는 기타, 노숙용 텐트와 매트, 버너와 코펠, 시계까지 차례로 팔다못해 막노동까지 나선다.

신경질 부릴 여유도 없다.

바로 코앞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찍는 6㎜디지털카메라. 신라고승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을 따라가며 겪은 그의 '왕고생전' 은 요즘 수요일 저녁7시5분마다 SBS '세상체험! 온몸을 던져라' 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처음에는 인도 한달만 가고, 다른 팀이랑 교대하기로 돼있었어요. 스케줄 다 중단하고 갔죠. 근데 누가 이 고생에 나서겠어요? 여기까지 온 것, 우리가 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된 거죠. ” 그 와중에도 개그맨다운 '쇼' 감각이 발휘된다.

영어 '개그' 로 이란 사람, 파키스탄 사람 다 웃겨봤다.

기타만 들면 구름처럼 (!) 모여드는 관객덕분에 '세계무대진출' 에 자신감도 얻었다.

체중은 9㎏까지 빠졌지만 “행정고시 붙고는 러시아연수 가본 게 전부였는데 개그맨돼서 7개국이나 가봤다” 고 너스레를 떤다.

'북천축국' 의 옛수도인 다람살라에 갔을 때, 티베트 망명정부의 달라이 라마와 미국배우 리처드 기어를 만난 것도 빠뜨릴 수 없다.

소탈한 성품의 달라이 라마는 그가 “우리나라도 일제식민지를 겪어봤다” 며 건넨 태극기에 입을 맞췄다.

요즘도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공부중인 그는 “개그맨도 오피니언 리더” 라는 생각. 10년뒤에는 ' (개그맨) 그만두면 가만 두지 않겠다' 고 협박성 격려를 해주는 선배 이홍렬처럼 '노정렬쇼' 를 해보고 싶단다.

'뜬다' 아니면 '진다' 가 지배하는 요즘 연예계에서 보기드문 장기계획이다.

글 = 이후남·사진 = 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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