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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이태백 ⑭] 창업은 취업보다 백배는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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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이 창업한다고 인터넷 쇼핑몰을 부지기수로 만들었지만 다 없어졌어요. 온라인 창업도 오프라인에서 노하우를 배우고 해야 하는 거예요."

중소기업청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온 창업&프렌차이즈 이강원(39) 부장은 냉정하게 말했다. 경험도 없이 무작정 시작한 벤처 손에 쥔 돈은 이미 남의 돈이라는 것이다.

취업이 어려우면 창업으로 고개를 돌리라고 많은 사람들이 조언한다. 분명 창업은 좋은 대안이다. 그러나 이십대 후반의 젊은 청년이 쉽게 도전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 10년 이상의 사회 경험과 수천 ̄수억원의 자금을 손에 쥔 사십대 이상 퇴직자들도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부분이 창업이다. 단순한 아이디어 하나로 뛰어들었다가는 시간 낭비하기 일쑤다.

3년간 휴학하면서 금융회사, 제조업체 등에서 인턴생활을 했던 대학생 창업 벤처 동아리 서울시지부 손용선(숭실대 2년) 회장은 "흔히 취업 대안으로 창업을 이야기하는데, 저는 좀 반감을 갖고 있어요. 물론 벌려 놓는 것은 쉽지요. 그러나 깨져가면서 배운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게 아니에요. 취업이나 창업이나 같은 거예요. 제가 휴학하고 인턴을 한 것은 시스템 관리의 노하우를 현장에서 배우기 위해서였어요"라고 말했다.

창업 관련 전문가들은 아이템.영업.자금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이를 중심으로 정밀한 사업 계획을 마련 한 후 뛰어들어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청년 창업이라면 자금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따라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추가 투자자금을 마련할 때까지 사업을 이어나갈 영업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험 창업'으로 시작하라는 조언이 많다. 창업 자체를 시험삼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성공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는 절차는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창업보육센터 입주 ^창업관련 동아리 활동 ^공동 창업 등을 들 수 있다.

창업 보육센터(인큐베이팅센터)는 병원에서 미숙아를 키우는 인큐베이터처럼 말 그대로 기업을 만들어 어느 수준까지 키워주는 곳이다. 중소기업청(http://www.smba.go.kr), 서울시 창업보육센터(http://www.sbi.co.kr) 등의 기관과 주요 대학에서 운영한다. 보육 센터는 아이디어만 좋으면 적은 비용으로 입주가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입주 심사 과정에서 어느 정도 검증해 볼 수 있다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경희대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선진테크의 마케팅 담당자 심재민(언어정보학과 3년)씨는 "창업이 취업보다 100배 어려워요. 저는 취업을 위해 창업에서 배우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경희대는 교내 창업 경진대회에서 두 팀을 선발해 1년간 창업보육센터 입주 기회를 주는 등 약 1000만원 상당을 보조한다.

전문가나 이미 창업한 선배의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창업 동아리도 좋은 선택이다. 한국창업대학생연합회(KOSEN, www.kosen.or.kr), 이창모(www. 2cm.co.kr) 등에서 활동하며 시뮬레이션을 통해 창업 계획을 다듬으면 실패를 줄일 수 있다. KOSEN 산하 서울지역대학생동아리연합회에서 성공.실패 사례를 들어봤다.

평소 힙합을 좋아하던 A씨는 힙합마니아를 위한 인터넷 쇼핑몰 사업을 시작했다. 힙합에 관심이 많은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을 타깃으로 했으나 결국 사업을 포기했다. 아이디어는 독특했지만 힙합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마니아들이 경제적으로 구매력이 약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간과한 탓이었다.

컴퓨터 동아리 활동을 하던 B씨는 사양길이라는 PC방 사업에 뛰어들었다. 모든 컴퓨터를 직접 개조해 외양도 화려하고 성능도 좋은 컴퓨터를 선보였다. 수개월만에 적지 않은 단골 손님을 확보할 수 있었고 직접 튜닝컴퓨터를 조립.판매하고 설치까지 해주는 데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너무 많아 사양 산업이라는 PC방도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경쟁력을 갖추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KOSEN 유덕수 회장(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부 3)은 "닷컴의 거품이 빠진 뒤 대학생 창업동아리들 역시 달라졌다"고 말했다. 코스닥 등록으로 한몫 잡으려는 허황된 꿈이 사라진 대신 실용성을 강조하고 IT가 주류였던 업종도 기계, 화학, 한의학, 소창업 등으로 세분화됐다는 것이다. 더불어 올바른 기업가 정신을 배우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고 한다. KOSEN은 지역별 창업연합회가 전국단위로 뭉쳐 2000년 2월 재탄생한 단체로 전국 200여개 대학의 500여개 창업동아리에서 기술과 지식을 교류한다. 유 회장은 "청년실업이라는 사회적 이슈 때문에 창업이 대두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주도적으로 자기의 꿈을 펼치기 위해 창업에 나선다면 그 열정으로 한국의 미래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뉴스센터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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