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기무사 터 미술관 첫 사업이 그림 장사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국립미술관에서 미술품을 사고파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판이다.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지난주 기자들과 만나 “기무사 터 미술관의 첫 전시는 대학생들 작품을 대거 내놓고 판매하는 미술견본시장(아트페어)인 ‘아시아프(Asyaaf)’”라고 밝혔다. 미술관은 7월 서울 경복궁 옆 기무사 건물에 이 미술장터를 유치할 계획이다. 올 1월 이명박 대통령이 “도심에 첫 국립미술관을 세우겠다”고 공언한 가칭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자리다.

배 관장 발언에 미술인들은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우선 국립미술관은 작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골동품상을 차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작품 판매는 화랑·경매사 등에서 할 일이다. 게다가 ‘아시아프’를 주최하는 곳은 한 회사다. 이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그간 특정 기관에 전시공간을 대관하는 임대 전시나 전시 기획사가 이윤을 가져가는 블록버스터형 전시를 거부해 온 것과도 배치된다.

미술계는 배 관장의 이번 발표에 펄쩍 뛰고 있다. ‘기무사에 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이끌어 온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미술계가 10년 넘게 공을 들여 얻은 결실인 만큼 첫 전시는 이 같은 숙원과 기무사의 공간적 특성을 살리는 의미 있는 행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술사가 최열씨는 “연구와 전시로 한국 미술의 조타수 노릇을 해야 하는 게 국립미술관이다. 아트페어를 열며 그림 장사를 한다는 것은 코엑스 같은 행사장과 미술관의 차이도 구별할 줄 모르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미술계 의견에 대해 배 관장은 “곧 헐릴 건물에서 무슨 행사를 하는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문제는 앞으로 어떤 건물을 짓느냐다”라고 응수했다. 미술관이든 공연장이든 예산을 쏟아부어 건물만 그럴듯하게 지어 놓으면 그만이라는 개발독재 시대식 사고로 들릴 법한 발언이다. 덮어놓고 규모를 키운 건물에 채울 소장품도, 관리할 전문가도 없이 그렇고 그런 행사장으로 전락한 일부 지자체의 전철을 경계해야 할 위치에서 할 얘기가 아니다. 기업 행사에 국립미술관의 첫 단추를 내줄 양인 배 관장은 “그렇게 반대라면 그 앞에 가서 촛불시위라도 하든지…. 나는 기무사 미술관이 유명해지기를 원하니까”라고 덧붙였다.

한 나라 미술계의 수장이라 할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미술관에 외부 행사를 유치하고, 연구직이어야 할 큐레이터들은 그림 판매에 발 벗고 나설 참인가 걱정이 앞선다. 미술계 밖에서 봉사와 열정을 내걸고 자원한 새 얼굴의 관장을 참신하다며 반기던 미술인들 기대를 어찌할까.

권근영 문화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