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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네트워크 혁명, 1000억 대 단말기를 연결하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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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호 20면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미국 서부에서 획기적인 실험이 이뤄졌다. 미 국방부 통신망 ‘아르파넷(ARPANET)’의 개발팀원이던 빈트 서프(66·현 구글 부사장)가 1969년 10월 25일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 분교(UCLA)의 컴퓨터에서 스탠퍼드대 컴퓨터로 문자 데이터를 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이 실험이 지금처럼 세상을 바꿔 놓을 거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FI <미래인터넷>大戰

미 국방부가 적의 공격으로 통신망이 일부 망가지더라도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비상망으로 고안한 아르파넷이 상용화되면서 산업은 물론 정치·사회·문화 부문까지 모든 인간사가 송두리째 바뀌었다. 지난해 말 현재 5억 대가량의 컴퓨터가 인터넷에 연결돼 10억여 명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 지구촌 인구 6명당 1명꼴로 인터넷의 혜택을 누리는 셈이다.

서비스 측면에서도 엄청난 발전이 있었다. e-메일을 예로 보면 유선으로 연결된 컴퓨터끼리 문자를 주고받던 데서 무선 단말기끼리 동영상·소리까지 주고받게 됐다. 기술 발전과 더불어 인터넷 사용처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온갖 비즈니스는 물론이고 전자정부, 교통·에너지 통제, 교육·의료·환경 등 사회 기간 분야까지 인터넷 기반 체제가 구축돼 있다. 인터넷은 이제 국가적·지구적 차원의 관심사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인터넷의 기능과 역할이 확대되면서 현 시스템은 점점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애초 현재 이용 모습을 상정해 개발된 게 아니라는 태생적 한계 탓이다. 새 이용처가 생겨나면 거기에 맞춰 개선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인터넷은 누더기 신세다. 갈수록 늘어나는 다양한 요구를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 곧 닥칠 거란 우려가 나온다. 이런 문제 인식 아래 등장한 게 미래인터넷(FI)이다. FI는 현 인터넷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 수요를 충족하는 게 과제다.

기술 개발 속도로 볼 때 앞으로 인터넷에 걸릴 부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된다. 현재 인터넷은 사용 주체인 사람을 중심으로 관리하지만 미래엔 센서가 달린 사물까지 관리하게 될 전망이다(관리성). 이렇게 되면 2020년께엔 1000억 대가 넘는 기기가 인터넷으로 연결될 것으로 예상된다(확장성 및 편재성). 이미 TV가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처럼 냉장고·전기밥솥·자동차 등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들어가는 모든 제품이 연결 대상이다. 심지어 가로수나 농작물에 센서를 부착해 인터넷으로 관리한다는 구상까지 나온다. 그러려면 기계와 기계끼리 소통하는 장치가 필요하다(이질성). 더욱이 현재 인터넷이 유선 위주라면 미래엔 무선 위주가 돼야 한다(이동성). 특히 인터넷 의존도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 만큼 해커나 바이러스의 공격을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보안성).

이런 요구 사항을 모두 충족하는 네트워크가 바로 FI다. FI 개발에 먼저 발벗고 나선 나라는 미국이다. 인터넷 원조답게 미국은 2005년 미국과학재단(NSF) 주도로 FI 개발에 착수했다. 미 국가정보위원회(NIC)는 지난해 ‘와해성 민간기술’이란 보고서를 내놨다.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갖지 않을 경우 2025년 미국의 초강대국 입지를 위협할 여섯 가지 기술을 정리한 문서였다. 여기엔 에너지 저장물질, 바이오 연료, 바이오 화학제품, 청정 석탄기술, 서비스 로봇과 함께 FI가 포함됐다. 미국이 FI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유럽연합(EU)과 일본도 곧바로 추격전에 나섰다. 특히 EU는 인터넷 기술을 미국에 선점당한 뼈저린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강력한 연구 협업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일본도 지난해 92개 과학기술 과제를 선정하면서 가장 중요한 S등급(6개 선정)에 FI를 포함시켜 예산을 우선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도 2007년 FI 연구에 착수했다. 2006년 9월 발족한 미래인터넷포럼을 주축으로 대학교와 연구소가 연구에 참여 중이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EU·일본 4개국은 FI 개발을 위해 한편으로는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독자 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이 인터넷 개발의 주역이 된 덕분에 20세기 정보기술(IT) 혁명을 주도하면서 IT 산업을 선도했던 것처럼 FI 기술의 표준을 장악하는 국가가 21세기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차지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FI 개발 경쟁에서 한발 뒤져 있는 상태다. 연구 착수 시기가 늦어서가 아니다. 아직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해 국가 개발계획조차 마련하지 않은 탓이 크다. 그러다 보니 연구개발 예산이 미국이나 EU의 1~2%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김봉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네트워크연구본부장은 “아직 FI 국가 개발계획이 없다 보니 연구 예산을 충분히 배정받는 게 불가능하다”며 “올해라도 꼭 국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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