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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남한테 욕 먹지 마라”… 투자 땐 ‘겁 없는 승부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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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호 24면

태양광 산업으로 한국에서 가장 ‘뜬’ 기업은 OCI(옛 동양제철화학)다. 태양전지의 기초 소재인 폴리실리콘 양산에 성공한 이 회사가 지금까지 수주한 금액은 110억 달러(약 14조6500억원)에 이른다. 이와 함께 ‘뜬’ 인물이 이 회사 신현우 부회장이다. 그는 2005년부터 OCI의 폴리실리콘 투자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창립 50주년 OCI 이수영 회장

서울 소공동 OCI 사옥, 신 부회장의 집무실에는 그가 특별히 아끼는 그림이 하나 있다. 바로 ‘욕심쟁이 개’ 그림이다. 개울 속에 비친 뼈다귀가 더 커 보인다며 으르렁거리다가 결국 제 입 속에 있던 뼈다귀까지 놓쳐 버린 이솝 우화 속의 그 개다.
이 그림이 사무실 벽 한쪽에서 신 부회장을 20년 넘게 지켜보고 있다. 신 부회장은 “1980년대 중반 고(故) 이회림 명예회장이 구해온 그림”이라며 “회장께서 이 그림을 가져오더니 아이처럼 껄껄 웃었다”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이어 “항상 리스크를 생각하고 과욕을 삼가라는 창업자의 뜻이 그림에 담겨 있다”고 해석했다. 그림 한 점이 그 회사의 기업문화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욕심쟁이 개’ 그림은 기업인으로서 분수 지키기, 탄탄한 경영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실제로 OCI는 그렇게 성장해 왔다.

2007년 작고한 이회림 명예회장이 소다회 제조업체로 OCI(창업 당시 동양화학공업)를 세운 것은 1959년 8월이다. 이 회사는 올해로 꼭 쉰 살이 된다. 지금은 이수영(67·사진) 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알짜배기’ 화학기업으로 주가를 높이고 있다. 이 회장은 2004년부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도 겸임하고 있다.

‘욕심쟁이 개’의 교훈
이 회장의 행보는 여느 기업인과는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영자의 이익단체인 경총의 수장답게 노사문화 개혁 얘기가 나오면 그는 직설화법의 달인이 된다. 가령 “노동 관련 법안이 노동계에 편향돼 기업도 파업을 할 수 있다”거나 “노사문화 개혁을 위해서는 기업도 투명 경영, 윤리 경영에 적극 나서야 한다” 같은 쓴소리를 서슴지 않는다. 반면 회사 얘기만 나오면 이 회장은 말문을 닫는다. 어떤 질문에도 침묵으로 일관하다 “그런 거는 회사에다 물어 봐라”고 대답하는 게 고작이다.

왜 그럴까. 이 회장의 한 지인은 “기업 경영이란 게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어지는 그의 해석이다. “지금이야 태양광 산업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면서 OCI가 크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기업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특히 기업의 미래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오너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경총 회장 자격으로서는 ‘날 선 소리’를 한다. 노사 문제에서 사측 대표를 맡고 있는 만큼 그 역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회장이 임직원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남한테 피해줄 일, 욕먹을 일은 애당초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회장은 “돈 버는 일은 그 다음에 해도 된다”고 말한다. 무척 단순해 보이는 명제지만 이것은 ‘OCI의 묵계’로 통한다. 이런 묵계는 OCI의 경영 활동 곳곳에서 쉽게 발견된다. 신 부회장은 “OCI가 신사업을 할 때는 세법·상법·공정거래법까지 모두 점검해 걸림돌은 없는지 알아보는 게 먼저다. 이를 통과해야 비로소 신사업 검토에 들어간다”고 전했다.

최근 이 회장의 차남인 이우정(40) 사장이 경영하는 넥솔론이라는 회사가 재계의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넥솔론은 폴리실리콘을 공급받아 태양전지의 중간소재인 잉곳과 웨이퍼로 가공하는 업체로 2007년 7월 설립됐다. 이 회사의 지분 중 70%를 이 사장과 이 회장의 장남인 이우현(41·현 OCI 총괄 부사장)씨가 보유하고 있다. 원자재(폴리실리콘) 업체가 가공업(잉곳과 웨이퍼)에 뛰어들자 뒷말이 나왔다. 넥솔론이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사업을 한다는 시샘이었다. 실제 넥솔론은 설립 2년도 안 돼 40억 달러대 물량을 수주했다. 지난해엔 매출 758억원에 순이익 153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우정 사장은 당당했다. 그는 최근 기자와 만나 “선급금으로 제값 치르고 OCI로부터 폴리실리콘을 공급받는다”고 말했다. 남들과 똑같은 가격으로 폴리실리콘을 사오기 때문에 부당 지원 시비에서 자유롭다는 주장이다. 기술력에 대해선 “잉곳과 웨이퍼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국내 몇 안 되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정도 경영, 원칙 경영을 강조하는 이 회장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경영 방침은 대외 관계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소디프신소재와 경영권 분쟁이 생기자 이 회장은 “애당초 잘못한 게 없다. 원칙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이 사건은 OCI의 투자를 받은 소디프신소재가 OCI를 기술 유출 혐의로 고소하면서 촉발됐다.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까지 가는 듯했으나 법원의 중재로 양측은 다시 손을 잡은 상태다.
 
창업 이래 ‘화학’ 한 우물만 파
그렇다고 OCI를 마냥 조용한 회사, 보수적인 회사로 여기면 큰 착각이다. 신 부회장은 OCI를 “겁이 없는 회사”라고 말한다. 이 회사가 걸어온 길을 보면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OCI는 인천 서해안 간척지를 매립해 소다회 공장을 지은 이래 과탄산소다·카본블랙·핏치·흄드실리카 같은 제품을 쏟아냈다. 현재 과탄산소다는 세계 2위, 핏치는 세계 3위, 소다회는 세계 4위 생산량을 자랑한다. 이름조차 생소한 제품이지만 전자·전기·자동차·화학 등 모든 산업에 ‘약방의 감초’처럼 쓰이는 원료들이다. OCI는 이런 제품을 40여 가지나 만든다.

신 부회장의 말이다. “OCI는 지난 50년간 ‘무모한 도전’을 계속해 왔다. 그러다 보니 OCI에 국내 시장점유율 50%가 넘는 제품이 많다. 물론 실패한 제품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40년째 근무하는 나 역시 PBA라는 제품 개발에 15년을 허비한 적이 있다. 그래도 멀쩡히 회사 다니고 있다.”

요즘 각광받고 있는 태양광 사업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OCI의 신수종 프로젝트로 ‘폴리실리콘 개발’ 사업 계획서가 2005년 이 회장 책상 위에 올라왔다. 4000억원대 투자 자금이 문제였다. 아무리 자금 사정이 탄탄하다고 해도 연 1조원대 매출을 올리는 회사에서 이런 대형 투자는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 회장은 수개월을 고민한 끝에 그해 말 “해 봐라”며 조용히 사인을 했다. 하지만 이 결단으로 모든 게 끝난 게 아니었다.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지만 폴리실리콘은 헴록(미국)·바커(독일)·REC(노르웨이) 등 5개 업체가 핵심 기술을 갖고 기술 이전을 해주지 않는 분야였다. 무리한 투자를 감행했다가 실패하면 낭패인 상황이었다. 이 회장은 그러나 과감히 폴리실리콘 공장 설립을 밀어붙였다. 결국 OCI는 2007년 11월 폴리실리콘 시험 생산에 들어가 이듬해 3월 양산에 성공했다. 그의 내공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다시 신 부회장의 말이다. “만약 실패하면 전문경영인이야 옷을 벗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오너는 다르지 않나? 그런데도 서류를 모두 읽어 보더니 사인하더라. OCI는 오너가 겁 없이 투자할 줄 아는 회사다.”

비슷한 시기 OCI에선 회사의 비전을 새로 정립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때 이 회장이 직접 정의한 OCI의 핵심 가치가 바로 ‘차·차·차’다. 새로운 기회를 보고 도전하고 기업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에서 기회(Chance), 도전(Challenge), 변화(Change)의 영문 머리글자를 우리 말대로 읽은 것이다. 당시 이 회장이 기회·도전·변화 같은 단어가 나오자 “그러면 차·차·차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기회·도전·변화 강조
‘차·차·차 문화’는 기술개발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에서도 나타난다.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OCI는 지난 50년 동안 끊임없는 구조조정을 겪었다. 인수합병(M&A)도 수없이 경험했다. 70년대에는 농약 사업에 진출했다가 20여 년 만에 철수했고, 그 중간에도 염화 제2철·인산칼슘·고무약품 등 비주력 제품에서 손을 뗐다. 글로벌 M&A도 활발하게 진행했다. 미국 노스아메리칸케미컬 지분을 인수했다가 100% 넘는 수익을 내고 판 적도 있다. 세계적 카본블랙 회사인 컬럼비안케미컬을 인수했다가 다시 시장에 내놓기도 했다. 말 그대로 변신의 귀재인 셈이다. 회사 관계자는 “OCI는 단 한 번도 조용히 있은 적이 없다”며 “무엇보다 화학기업으로서 변화를 읽는 선구안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 변화의 한복판에서 이 회장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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