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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부대 저격수 탄 링스 헬기 뜨자 배 오르던 해적 줄행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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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말리아 해적의 창궐 지대인 아덴만에서 우리 선박을 보호하던 한국 해군의 문무대왕함(4500t급 구축함) 작전상황실에 긴급구조 신호가 잡힌 건 17일 오전 8시25분(현지시간). 해외를 오가는 선박들의 무선교신망인 국제상선 공통망을 통해 “해적선으로부터 쫓기고 있다”는 다급한 구조요청이 들어왔다. 63km 후방에서 홀로 항해 중이던 덴마크 국적의 퓨마호(2120t급)로부터 전해진 신호였다. 당시 10노트로 항해 중이던 퓨마호를 5명의 해적이 탄 쾌속선이 뒤따르고 있었다. 해적선의 속도는 20노트의 고속으로 두 배의 거리는 6.4km에 불과한 긴박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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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부대장인 장성우 대령은 즉각 문무대왕함 갑판에 탑재돼 있던 링스(LYNX) 헬기를 출동시켰다. 본래 대(對)잠수함 작전임무를 맡는 헬기지만 해적 퇴치작전에 맞게 특수 개조한 링스였다. K-6 중기관총이 장착돼 있고 사거리 20km의 시스쿠아 미사일과 어뢰 등도 쏠 수 있다. 저격용 소총으로 무장한 특등사수 2명도 탑승했다.

최고시속 232km에 이르는 링스 헬기는 출동 22분 만인 오전 8시47분 현장에 도착했다. 5명의 해적들이 퓨마호에 줄사다리를 걸고 막 올라타려는 절박한 순간이었다. 해적들은 로켓포(RPG-7)와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어 헬기가 가까이 다가가기 쉽지 않았다. 기관총과 미사일로 무장한 링스 헬기가 위협 비행을 하며 맴돌자 해적들은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퓨마호 위에서 가슴 졸이던 선원들은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방탄조끼와 헬멧을 갖춘 저격수들이 소총을 내밀며 사격 준비동작을 취하자 배에 오르려던 해적들이 도주하기 시작했다. 6km가량 떨어진 인근 해역에는 13명의 해적을 태운 해적선 모선이 대기하고 있었다. 청해부대원들은 모선으로 도주하는 해적선을 추적, 20km 밖으로 완전히 물러날 때까지 선박에 대한 안전조치를 취한 뒤 1시간8분 만에 작전을 종료했다.

합참 관계자는 “청해부대는 해적과의 교전이나 체포가 아니라 우리 선박의 호송이 주 임무”라며 “이 때문에 해적에게 총격을 가하거나 해적선을 나포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상선에 대해 해적 행위를 하는 등 명백한 위해가 아닌 한 교전·체포는 미국 주도의 연합해군사령부(CTF-151)가 맡는다는 것. 실제 이번 사태 발생 때 청해부대는 상황을 즉각 CTF-151 소속 미 게티즈버그함에 연락을 취했다. 해적들이 극렬하게 저항할 경우 무력으로 이를 제압할 지원 화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링스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SH-60(시호크) 헬기와 연합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청해부대 요원들은 긴박한 상황에서도 퓨마호와 미군 측에 “10분 내로 현장에 도착할 수 있으니 동요하지 말라”며 차분한 대응을 이끌기도 했다.

합참 이형국(육사 39기·대령) 해외파병과장은 “해적선은 통상 배에 올라탄 지 15분 내에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고 도주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 군의 신속한 작전으로 덴마크 상선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덴마크 상선의 선장은 무선교신망을 통해 문무대왕함에 사의를 표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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