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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각료 실무출신자 등용해야…미국재무장관 금융전문인 발탁 좋은 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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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환율과 금리가 춤을 추고 있다.

5대 증권사중 하나가 도산했고 시중은행의 경영권이 외국인에 넘어가는 것도 시간 문제다.

정부든 기업이든 이럴 때 어설프게 덤비다간 코를 다친다.

예를 하나만 들어 보자. 정부가 아무 대책없이 14개 종금사 영업을 정지시킨데 대해 해외 금융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아무리 급해도 고객의 예금인출 가능성부터 따져보고 부실채권의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자금줄이 막힌 기업이 어떤 곤란을 겪을지등 파장을 면밀히 검토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17일 방한한 보이케 JP모건 아.태지역회장이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국채발행이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고 어떤 방식으로 상환할 예정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부실채권의 해외 매각도 아이디어만 있지 경험있는 증권사가 전무 (全無) 한 실정이다.

이래저래 전문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한 중견기업의 鄭모 전무는 "교수들이 우리 경제를 망쳤다" 는 극언을 서슴치 않는다.

'경제학자 (또는 교수)' 는 많지만 진정한 '경제전문가' 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민간부문은 나은 편이다.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정부관리는 대부분 전문가 (specialist)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 (generalist) 다.

조왕하 (趙王夏) 동양종금사장은 "전문가라야 위기를 풀 수 있다" 고 지적하면서 "실무를 잘 아는 사람이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민간과 정부간의 순환보직을 생각해 봄직하다" 고 말한다.

공병호 (孔柄淏) 자유기업센터소장도 같은 생각이다.

"현장 정보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고는 감당해 낼 수 없을 만큼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면서 "기업인을 장관으로 앉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 이라고 말한다.

그는 대통령을 포함, 모든 고위관리들이 "경영 마인드" 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무를 알아야 진정한 조직 장악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 싱가포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능력위주의 부서관리' 로 이름난 싱가포르 정부는 관리들에게 높은 복지 수준을 보장해주는 대신 부서간 철저한 경쟁을 유도,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총리와 장관은 은행.변호사.공인회계사등 6개 고임금직종의 최고경영자가 받는 임금의 70~80%를 받는다.

민간부문에 뒤떨어지지 않는 고급인재 확보와 깨끗한 정부 유지를 위한 필수요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고촉통 (吳作棟) 총리는 국영선박회사인 NOL사의 사장이었고 리처드 후 재무장관은 셀 석유회사 회장이었다.

이밖에 대부분의 각료들이 민간기업에서 영입된 사람들이다.

홍콩의 초대 행정장관으로 선출된 둥젠화 (董建華) 도 홍콩 제일의 선박회사인 동방해외 (東方海外) 의 회장이었다.

영국의 더 타임스紙에 의해 '홍콩에서 가장 훌륭한 기업인' 으로 선정된 적이 있는 둥장관은 영국 리버풀大 출신의 합리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실무형 전문가들이 행세하는 곳은 역시 미국이다.

레이건 정부에서 재무장관 4년과 대통령 비서실장 3년을 지낸 도널드 리건은 메릴 린치의 사장과 회장을 역임한 증권가의 베테랑이었다.

최근 IMF 협상을 전후로 우리 귀에 익숙해진 로버트 루빈 현 재무장관도 메릴 린치와 더불어 월가의 5대 투자은행중 하나로 꼽히는 골드먼 삭스에서 26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골드먼 삭스 부회장, 회장을 거쳐 93년 대통령 경제정책보좌관으로 영입됐고 95년 현직에 임명됐다.

이런 '빠끔이' 를 상대로 국민정서를 들먹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새 정부는 각료 선임에서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재계의 바람이다.

권성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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