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람 사람] 제자 사랑에 박봉 쪼갠 교수님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 숭실대 캠퍼스에서 정경위.최재호(앞줄 왼쪽부터) 교수가 제자들에 둘러싸여 웃고 있다. [김형수 기자]

"학생들 공부시키려고 교수들이 장학금을 좀 내놨을 뿐입니다. 밖으로 알리고 자랑할 만한 일이 못되는데요…."

숭실대 불문과 교수들이 이색적인 장학회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간 기자에게 학과장인 최재호(49) 교수는 "선생이 제자 챙기는 게 무슨 기삿거리가 되느냐"며 버티다가 "꼭 써야겠다면 아주 작게 취급해달라"면서 말문을 열었다.

최 교수 등 불문과 교수 네명 전원은 최근 개인 돈을 털어 마련한 1억3000만원으로 '숭실대 불문과 문화장학회'(www.francessu.ac.kr)를 만들었다. 재학생 가운데 성적 순으로 학기당 두명씩, 한해 네명을 뽑아 프랑스나 프랑스어권 나라에 연수를 보내주기로 한 것이다. 학생 한명에게 지급되는 장학금은 300만원.

"프랑스나 프랑스어권 국가를 다녀온다는 것 외에는 장학금 사용과 관련해 어떤 부담도 지우지 않으려 합니다. 며칠 여행만 해도 좋고, 자기 돈을 더 보태 단기 연수를 떠나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지 체험입니다. 어문학도들에게는 현지의 언어 및 문화를 직접 경험해보는 것만큼 좋은 공부도 드물 것입니다."

최 교수는 "앞으로 10년 정도는 연수를 보낸다는 목표로 돈을 모았는데, 몇몇 불문과 졸업생이 이 소식을 전해듣고 자신들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고 말했다.

졸업생들은 벌써 장학회를 위한 모금 통장을 만들었으며, 한 기업체의 파리 지사장으로 있는 졸업생은 연수 오는 후배들을 위해 방을 내주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숭실대 불문과는 1981년 창설됐다. 창설 주역으로 이 학과의 대모(代母) 격인 정경위(56) 교수는 "원래 우리 학과 졸업생과 재학생은 매년 한두차례 단합대회를 다녀올 정도로 우애가 깊다"면서 "이 장학회가 동창생 간에 우정과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도 "장학금으로 해외를 다녀온 학생이 졸업하고 취직하면 후배들을 위해 적은 돈이라도 낼 것이고, '내리 사랑'이 계속되면서 기금도 점점 늘어날 것"이라면서 "이 장학회가 오래 이어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누가 먼저 장학회 아이디어를 냈느냐는 질문에 두 교수는 서로 상대방을 가리켰다.

"아내는 아직 내가 장학금 내놓은 사실을 모릅니다. 신문에 나면 자금원을 대라는 추궁에 좀 시달릴 것 같네요."

최 교수는 사진 촬영도 극구 사양하다 결국 정 교수와 함께 학생들의 손에 끌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동섭 기자<donkim@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