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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영빈 칼럼

강남 서울대 사법부 조중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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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달 11일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언론사 경제부장들의 간담회가 있었다. 여기서 한 경제부장이, 여권의 5대 개혁 대상이 삼성.조중동.사법부.서울대.강남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인가 하고 대통령에게 물었다. 대통령은 그런 일은 생각한 적도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고 "그런 다섯개의 힘이 똘똘 뭉치면 역설적으로 개혁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설정은 가능하겠지만 그런 설정 자체가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고 단호하게 잘랐다.

*** 항간에 떠도는 5대 개혁 대상

우리 사회의 주류세력을 다섯으로 열거한 이 분류법은 정말 그럴 듯하다. 강남은 한국의 대표적 부유 지역이다. 강남 하면 보수세력의 결집지역으로 대선.총선 때마다 확인되는 곳이다. 천도는 곧 강남 붕괴라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정권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권력의 자리엔 항상 서울대 출신이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꾸준히 등장하는 게 서울대 폐지론 또는 국립대 공동학위제 같은 희석화론이다. 서울대 폐지는 곧 한국 엘리트층의 물갈이를 뜻한다.

조중동. 신문의 성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보수 메이저 언론을 대표한다. 이 메이저 언론을 겨냥한 듯한 이른바 언론개혁에 집권당이 발벗고 나서는 등 표적 개혁의 대상이다. 사법부 개혁. 법과 질서를 지키는 보루 역할을 하는 검찰과 법원이 개혁 대상으로 올라 대법관 선임문제, 배심제.참심제 도입 여부, 공직자 비리조사처 신설 등 논란이 한창 진행 중이다. 기존의 검찰.법원세력을 약화시키면서 재야 법조.시민단체 등의 진입이 강화되는 안이라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끝으로 대기업을 대표한 삼성은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개혁대상으로 지목돼 왔으니 새삼스러울 게 없다.

정권이 의도했든 안했든 강남.서울대.사법부.조중동.삼성이라는 이 사회 주류세력이 개혁대상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치솟는 강남의 땅값, 강남에 살아야 대학을 간다는 진기한 신화, 서울대.사법시험으로 연결되는 출세 코스, 대통령 권력에 대한 몇몇 신문의 '조폭적'비판, 무전유죄 유전무죄식의 법조계 전반에 대한 불신, 정경유착의 대명사가 된 대기업…. 이는 이 사회를 이끄는 주류세력이 제 역할, 제 기능을 제대로 했느냐에 대한 경고음일 수도 있고, 또는 이 판에 확 갈아 엎어야 한다는 이상 난기류의 흐름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불쾌한 요언(妖言)으로 깔아뭉갤 게 아니라 이 사회 지도층 스스로 몸을 낮추고 옷깃을 여미는 반성.변화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런 전제 하에서 현재 진행 중인 천도, 사법.언론개혁, 서울대 폐지론은 한국 사회를 발전추동형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과거회귀적 퇴영사회로 몰아가는 이상 난기류 현상이라고 본다. 낡은 보수와 낡은 진보의 대립개념으로 사회문제를 풀려는 구시대적 접근방식이다. 진보파 집권에 의한 강압적 보수척결이어선 안 된다. 이래선 국민 50% 이상이 보수임을 자처하는 사회에선 공감대 형성이 되지 않는다. 시장의 역할과 공공적 통제라는 '제3의 길' 방식을 동시에 작동시켜야 한다. 부유층이 존경받고 서울대가 세계적 연구중심 대학으로 발전하게끔 밀어주고 개혁해야 한다. 앞서가는 모든 것을 뒤로 잡아당겨 함께 못살고 함께 못 배우는 평준화 사회, 평등주의 이념으로 글로벌 경쟁체제에서 살아가려는 시대착오 분위기에 휩싸여서는 이 사회가 추락할 수밖에 없다.

*** 사회지도층 옷깃 여며야 할 때

또 하나 이 사회 저류에 흐르는 포퓰리즘이라는 불확실성 난기류도 문제다. 강남.서울대.사법부.메이저 언론.대기업 이 모두가 소수다. 소수의 약점을 까발리고 이들을 몰매의 대상으로 인민재판식 형장에 올려 개혁 척결의 대상으로 삼는 마녀사냥이 돼선 안 된다. 어느 사회나 주류세력은 존재한다. 이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존경 대상이 되지 못할 때 새로운 주류가 마치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 자연스레 시장논리에 따라 바뀌게 돼있다. 주류세력 척결을 위해 선동적 폭력으로, 집권의 힘으로, 천도를 통해, 사법.언론개혁을 통해 억지로 바꾸려 한다면 이야말로 포퓰리즘의 폭거고 낡은 진보의 쿠데타라 할 수 있다. 낡은 보수가 새롭게 변신해야 하듯 낡은 진보 또한 새 시대의 새 발상으로 전환하지 않고선 이 사회의 난기류는 사라지지 않는다. 건전 보수와 건전 진보는 아름다운 동행자다.

권영빈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