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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뒤 물 건너 올 240만 표 선거 뒤집을 ‘결정적 위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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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캐스팅 보트’ 역할 가능성
재외국민표, 이탈리아 다수당 가른 적도

재외국민 투표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크게 판세와 투표율 두 가지다. 판세가 양자대결 구도, 박빙의 승부로 흐를수록 재외국민 투표가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15, 16대 대선의 경우 1, 2위 후보자 간 표차는 각각 39만 표, 57만 표에 불과했다. 현재 재외국민의 숫자는 300여만 명. 한국 국적의 외국 영주권자 145만 명과 해외 주재원·유학생 등 일시 체류자 155만 명이다. 이 중 19세 이상 유권자는 240여만 명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15, 16대 대선 때와 같은 상황이라면 재외국민의 투표가 결과를 좌우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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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국민의 투표참여율이 예상보다 낮을 것이란 지적도 있지만, 본지 설문조사 결과 약 80%(192만~200만 명)가 투표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들의 영향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선 재외국민 투표가 다수당을 결정한 사례가 있다. 이탈리아는 2006년 총선부터 재외국민의 투표를 허용했다. 세계를 유럽과 북·중미, 남미, 아시아·아프리카·중동 4개 지역으로 나누고, 인구수에 따라 하원 12석과 상원 6석을 배정했다. 그 결과 국내 상원 투표에선 중도좌파 154석, 중도우파 155석이었지만 중도좌파가 재외국민 투표에서 4석을 얻어 다수당이 됐다.

일본은 2000년 6월 중의원 선거부터 재외국민 투표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례대표 투표만 가능했지만, 2006년부터는 지역구 중·참의원 선거와 보궐선거, 재선거 참여까지 가능해졌다. 하지만 재외국민의 투표율이 낮아 선거 결과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2005년 중의원 선거 때는 유권자 72만여 명의 3% 정도가 투표했다.

재외국민 79% “나도 한 표”

30, 40대 적극적 … 60대 이상선 63% “투표”
“진보적 성향” 37.7% “보수적 성향” 25.7%

재외국민 참정권 시대를 맞아 본지가 지난달 재외국민 122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한나라당 지지율(37.5%)이 가장 높았다. 민주당(15.7%)의 두 배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후보를 선택할 때 가장 중시하겠다고 한 것 가운데는 ‘개인의 능력(55.7%)’이 가장 높았다. 이어 도덕성(30.3%), 소속 정당(7.3%), 출신 지역(1.7%), 학연(0.3%) 등이었다. 재외국민들은 다양한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경험을 갖고 있어 지연·학연보다는 후보자의 자질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재외국민 참정권 토론회’가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 월셔 그랜드 호텔에서 열렸다. 토론회에 참석한 재미 교포들이 투표소 설치 확대와 우편투표 허용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들어 보이고 있다. [LA=신현식 미주 중앙일보 기자]


재외국민들의 투표참여 열기는 뜨거웠다. 응답자의 79.2%가 투표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연령별로는 30~40대의 투표참여 의사(82.1%)가 가장 높았다. 10~20대에선 77.2%, 60대 이상 연령층에선 63.2%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

◆정당별 지지도=한나라당의 주요 지지층은 남성과 장년층이었다. 남성(715명)의 42.9%가 한나라당을 지지했다. 특히 나이가 많을수록 한나라당 지지자가 많았다. 50대에선 52.1%, 60대 이상에선 49.1%가 한나라당을 지지했다. 반면 여성의 한나라당 지지율은 29.8%에 그쳤다. 민주당의 경우 남녀 모두 10%대 중반의 지지를 얻었다.

응답자의 정치성향 분석에선 진보가 보수를 앞섰다. ‘매우 진보적’ 또는 ‘다소 진보적’이라는 대답(총 37.7%)이 ‘매우 보수적’ 또는 ‘다소 보수적’이라는 응답(총 25.7%)보다 많았다. 그럼에도 보수성향의 한나라당 지지자가 많은 것은 ‘중도성향’(35.8%)의 교포 상당수가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이는 한나라당의 국정운영 성과 여부 등에 따라 정당별 지지 분포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유효 투표권자 분석도 비슷=1220명 가운데 ‘투표권이 없다’고 답한 사람과 무응답자를 제외한 803명(갖고 있다, 잘 모르겠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정당별 지지도는 유사했다. 한나라당 지지자가 288명(35.9%)으로, 민주당 146명(18.2%)에 크게 앞섰다. 나머지 정당들에 대한 지지율은 미미했다. 친박연대(46명·5.7%), 민주노동당(34명·4.2%), 자유선진당(19명·2.4%), 창조한국당(6명·0.7%) 등이었다. 그러나 ‘기타 정당(13.4%)’이라고 답한 사람과 응답하지 않은 사람(19.4%)도 전체의 32.8%에 달해 선거 당시의 판세나 분위기에 따라선 이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됐다.

투표할 때 가장 중시하겠다고 한 것 가운데는 전체 조사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능력(54.5%)’과 도덕성(31.5%) 등 자질이 우선이었고, 소속 정당(8.1%), 출신 지역(1.6%), 학연(0.2%) 등은 매우 적었다.

◆“10명 중 6명이 한국 뉴스 매일 접해”=전체의 57.4%가 한국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은 6%에 불과했다. 남성(66.9%)의 관심도가 여성(44%)보다 높았다. 전체의 58.3%가 한국 신문·인터넷 등을 통해 ‘한국 뉴스를 매일 접한다’고 답했다. 반면 4.3%는 국내 뉴스를 전혀 접하지 않고 있었다. 대부분(96.8%)은 한국 대통령 이름(이명박)을 알고 있었다.

◆투표 의지=‘진보적’이라고 답한 사람의 85.7%가 투표에 참여하겠다고 한 반면 ‘보수성향’은 75.8%였다. 연령별로 나이가 많을수록 투표의지가 높았다. ‘꼭 참여하겠다’는 비율이 19세~ 20대는 24.3%, 30대는 27.3%, 40대는 30.8%, 50대는 가장 높은 36.5%, 60대 이상은 34.9%였다. 또 한국 뉴스를 자주 접하는 사람일수록 투표 의지가 강했다. ‘꼭 투표에 참여’하겠다고 한 사람의 69.3%가 ‘거의 매일’, 23.5%가 ‘일주일에 2~4번’ 한국 뉴스를 접한다고 답했다.

한국 뉴스를 자주 접할수록 후보를 선택할 때 ‘능력’을 중시하고 있었다. ‘거의 매일’ 한국 뉴스를 접한다고 답한 사람의 60.5%가 ‘능력’을 우선시했지만, ‘한 달에 2~3번’이란 사람은 54.8%만이 ‘능력’을 중시했다.

◆지역별 성향=국가별로 보면 중국에 있는 재외국민들의 투표 의지가 가장 강했다. 중국(홍콩 제외)의 경우 설문조사에 응한 120명 중 114명(95%)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에 가깝고 최근 이주한 사람이 많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이어 프랑스(93.5%), 홍콩(91.3%), 일본(88.6%), 미국(66.8%) 순이었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교민사회 규모가 크고, 거주 기간이 길어 투표 참여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내 재외국민의 한나라당 지지도(40.5%)가 눈에 띄게 높았다. 민주당 지지율은 14.2%에 그쳤다. 일본에서도 한나라당 지지율(40.2%)이 민주당 지지율(13.3%)을 압도했다. 중국에선 한나라당(28.3%)과 민주당(23.3%)의 지지율 차이가 적었다. 지역별로 보수와 진보 성향을 보면 대체로 진보가 많았다. 미국에선 진보가 36.2%, 보수가 27%였다. 일본에선 진보 33.5%와 보수 26.3%였다. 특히 홍콩에선 진보(41.3%)가 보수(21.3%)의 두 배 가까이 됐다. 중국에서도 진보(41.7%)가 보수(28.3%)보다 훨씬 많았다.

들썩거리는 교포 사회

각 정당 ‘재외 표심’ 얻으려 광고·e-메일
미국만 130만 명 … 한인단체 주가 급등

지난달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내 윌셔 그랜드 호텔. KBS 아메리카가 주최하는 재외국민 참정권 토론회가 열렸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원내수석부대표들과 차만재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등 교포들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교포들은 재외공관으로 제한된 투표 장소를 확대하고 우편투표를 허용할 것을 요구했다. 내달 5일에는 미주한인 참정권 실천 연합회가 창립식을 연다.

재외국민 참정권 시대를 맞아 해외 한인 사회가 들썩거리고 있다. 국내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잦아졌고 ‘표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단체장들의 ‘주가’가 치솟고 있다. 그러나 자칫 재외국민 사회의 분열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빠르게 움직이는 정치권=국내의 정당과 정치인들은 240여만 명으로 예상되는 재외국민의 표를 얻기 위해 벌써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재외국민 참정권 허용 법안이 통과된 뒤 일본에는 한국 국회의원들의 방문이 부쩍 늘었다. 주일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올 3월에는 유난히 방문 의원이 많았다”고 밝혔다. 재일 한국인 사회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안면을 익혀 두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유럽에선 교민 수가 가장 많은 독일이 주목받고 있다. 한나라당은 연초 프랑크푸르트에 독일 지부를 열었다. 교포 신문에 광고도 냈다. 또 유럽 각국 교포 신문에 전화를 걸어 인사를 하는 등 얼굴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진보신당과 민노당도 젊은 유학생 등과 함께 독일에서 홍보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독일 교민이 미국·일본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이 강하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경우 지난달 중순 여야 의원 3명이 찾았다. 재외국민 참정권을 홍보하고 교민 사회의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프랑스 한인 회장을 만나 교민 사회에 대한 각 당의 관심을 전했다.

교민 숫자가 1만여 명에 불과한 홍콩에서도 재외국민 투표 바람이 불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최근 교민들에게 재외국민 참정권의 의미를 설명하며 지지를 부탁하는 e-메일을 돌렸다.

◆단체장 선거 열기 뜨거운 미주=미국에는 130만 명의 재외국민이 산다. 전 세계 재외국민의 절반 정도다. 이 때문에 교포 사회의 표심을 움직일 수 있는 한인 단체들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단체는 미주한인회총연합회(미주총연)와 LA한인회, 뉴욕한인회, 오렌지카운티 한인회 등이다. 다음 달 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주총연은 미국 전역 160개 한인회의 연합 단체다. 그래서 “미주 교포들이 참정권을 행사할 때 미주총연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얘기가 나돈다.

LA한인회는 ‘LA 코리아타운’을 대표하고 있어 상징성이 크다. 재외국민 유권자 수도 가장 많다. LA한인회장은 내년 5월, 오렌지카운티 한인회는 내년 3월에 선거를 치른다. 한인회장 자리는 2년 임기에 연임도 가능하다. 미국 교민들이 첫 투표권을 행사하는 2012년까지는 이들이 각 단체를 이끌게 된다. 그래서 벌써 누가 이들 단체의 회장이 되느냐를 놓고 한인 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교민 사회 분열 우려도=재외국민 참정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달 “32만여 명이 사는 뉴욕·뉴저지 지역에 1000여 개의 한인 단체가 난립해 있다”며 “뉴욕 한인회장 자리를 놓고 3명의 후보가 각각 20만 달러(약 2억7000만원) 이상을 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나친 과열 경쟁을 꼬집은 것이다.

재중국한국인회의 정효권 회장은 “교민 사회가 선거철마다 지역·정당별로 사분오열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파독 광부 모임 베를린 지부의 최수문 전 회장도 “교민들의 오랜 숙원이 풀려 기쁘지만 얼마 안 되는 교민 사회가 정치 바람에 분열될까 걱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일부에선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재일대한민국민단은 최근 열린 정기중앙대회에서 “우리는 교포 사회를 교란시키는 어떠한 책동도 단호히 배제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정치적 중립을 선언했다.

강봉환 홍콩 한인회장은 “선거 때 교민 분열을 불러오는 인사에 대해선 한인회 회장 출마를 막는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1220명 어떻게 조사했나

중앙일보 도쿄·베이징·홍콩·파리 특파원과 미주의 5개 중앙일보 지사(LA·워싱턴·샌프란시스코·애틀랜타·시카고) 기자들이 3월 9일부터 2주간 총 1220명에게 설문을 받았다. 유권자 등록이 안 돼 있는 상태여서 비확률 임의표집 방식을 택했다. 체계적인 표본 추출이 불가능한 상태에선 어느 정도 객관성을 지킬 수 있는 방식이다.

국가별로는 재외국민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에서 전체의 절반(597명)가량을 조사했다. 미국 내에선 한국인 거주자 수를 감안해 LA 277명, 워싱턴 140명, 샌프란시스코 76명, 애틀랜타 60명, 시카고 44명으로 분배했다. 다른 국가에선 일본 도쿄(316명), 중국 베이징(120명)·홍콩(80명), 프랑스 파리 (107명)에서 실시됐다. 전체 응답자의 58%(715명)는 남자, 40%(486명)는 여자였다. 9명은 성별을 밝히지 않았다. 연령대는 19세~ 20대 140명, 30대 352명, 40대 396명, 50대 219명, 60대 이상 106명이었다. 7명은 나이를 밝히지 않았다. 중앙일보 여론조사팀이 설문 문항 감수와 통계 처리를 맡았다.

특별취재팀

이상일·김정욱(워싱턴), 남정호(뉴욕), 최형규(홍콩), 김동호·박소영(도쿄), 장세정(베이징), 전진배(파리) 특파원, 박경덕·최익재·김한별 기자(서울), 최상태·신승우 미주중앙일보 기자, 신창운 여론조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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