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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경기 올 상반기 바닥쳐 내년 하반기 본격 회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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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번 경제위기의 충격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또 본격적인 회복은 언제 찾아오는 것일까.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들이 주축이 된 서강시장경제연구소 주최 대토론회에선 경기의 저점이 올 상반기에 오지만, 본격적인 회복 시기는 2010년 하반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됐다. 성장률과 실업률 등 거시경제 변수에 대해선 외환위기 때와 비슷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측됐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서강의 제안’ 토론회가 16일 서강대학교 동문회관에서 열렸다. 제1세션 참가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정수·이인실·남주하 서강대 교수, 이덕훈 서강대 초빙교수, 전성인 홍익대 교수, 김원식 건국대 교수, 연태훈 KDI 연구위원. [박종근 기자]

 ◆내년 하반기에나 회복=발표자인 남주하 교수는 국내 경제가 2년(지난해 3분기~2010년 2분기)간 침체를 겪고 미국은 3년간 침체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마이너스 성장(-4~-2%)이 불가피하지만, 올 4분기엔 플러스 성장이 가능하고 내년 하반기엔 3~4%의 성장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세계 각국이 적극적인 부양책을 쓰고, 국제 공조를 긴밀히 하고 있어 앞으로 1~2년 내에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2차 금융위기 가능성은 작다고 봤다. 남 교수는 “미국의 주택 가격 하락이 2분기에 멈출 가능성이 있다”며 “자동차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가 파산해도 미국 정부의 유동성 지원으로 어느 정도 통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동유럽 국가와 남미 국가의 위기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대응으로 충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회복은 되겠지만 파장은 만만치 않을 듯하다. 외환위기 때와 비교해 대기업과 고소득층이 받는 영향은 다소 약하겠지만, 자영업자·중소기업·저소득층에 미치는 충격은 더 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청년실업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토론자로 나선 김원식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외환위기 전과 비교할 때 기업가 정신이 실종되다 보니 기업이 더 이상 사람을 고용하려는 의지가 없어졌다”며 “기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잘 만들어줘야만 고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더 과감한 대응책 필요”=남 교수는 이번 위기에 대한 정부의 초기 대응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의 유기적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금리인하 등 각종 대응책이 시장에서 불안이 나타난 뒤에 나왔다는 것이다. 또 위기 초기단계에서 쓸 수 있는 정책을 써야 하는데 지금 나오는 대책은 4~5년 단위의 중장기 과제가 많고 내용도 불분명하다는 지적이다.

남 교수는 단기적으론 돈을 더 풀고 정부 지출을 늘리는 통화·재정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재 연 2%인 한은의 기준금리를 0.25~0.5%포인트 추가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국회에 계류 중인 28조9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장기적으론 경제위기가 회복되는 시점을 전후로 인플레이션과 부동산 가격 등 자산 가격의 버블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실물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하기 전에 주식 가격과 부동산 가격이 급격하게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기업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부실기업들이 퇴출되지 않고 정부의 지원으로 오히려 부실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계했다.

김원배 기자

남덕우 전 총리 기조연설
“미국서 금융 국유화 주장이 있는데
관치금융 폐해 잘 모르고 하는 말”

 남덕우(사진) 전 총리는 ‘세계적 금융위기, 나는 이렇게 본다’라는 기조연설에서 “세계적 차원의 위기인 만큼 국제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요지.

지금 세계는 1930년대 이후 최대의 금융위기에 처해 있다. 세계화 시대에는 금융에 국경이 없기 때문에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 파탄이 국제적 금융 네트워크를 통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모든 나라로 파급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시장이냐 정부냐’, ‘민영이냐 공영이냐’, ‘분배냐 성장이냐’의 문제를 놓고 논쟁이 뜨겁다. 여기에도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시장의 실패’를 강조하지만 ‘정부의 실패’ 또한 문제다. 미국에서 금융회사는 공공성이 크므로 국유화하자는 주장이 나오지만, 이는 과거 우리나라의 관치금융 폐해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금융사 전체를 공영화할 필요는 없으며 우리나라의 산업은행·중소기업은행 같은 정책 금융기관은 가질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터전 위에서 균형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위기 극복을 위해 먼저 미 정부는 부채를 줄이고 재정 건전성을 회복해야 한다. 재정·무역 적자를 줄여야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국가 부채가 적은 나라는 적자재정을 통해 사회간접자본 시설과 사회 안전망 확충에 투자해야 한다. 국제수지 흑자국이나 외환보유액이 많은 나라는 국제 협력 자금을 출연해야 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이 명실공히 세계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기 위해 구조와 기능을 개편해야 한다.

대토론회 왜 마련했나

이번 대토론회는 2006년 6월 서강시장경제연구소가 설립된 후 처음 하는 대규모 행사다. 학자들의 지혜를 모아 경제위기 극복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대학원장은 “국가적 위기를 맞아 경제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차원에서 토론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이 연구소는 1970~80년대 고도성장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던 ‘서강학파’를 발전적으로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설립됐다.

서강학파는

서강학파는 원래 70~80년대 정부에 참여했던 서강대 교수 그룹을 일컫는 말이다. 재무장관과 경제부총리 등을 지낸 남덕우, 김만제, 이승윤씨가 대표적이다. ‘학파’라고 하기엔 이념이나 학문적 동질성이 약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대체로 개방과 성장을 추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강학파가 다시 조명을 받은 것은 노무현 정부 때였다. 2006년 2월 청와대는 ‘압축성장, 그 신화는 끝났다’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서강학파가 내세운 압축성장론이 파탄났고 이들이 추구한 불균형 성장이 양극화의 뿌리가 됐다는 비판이었다. 당시 남덕우 전 총리는 이를 두고 “대학생 수준의 글”이라고 일축했다.

그 뒤 서강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시장경제연구소가 설립됐다. 서강학파가 다시 뭉쳤다는 것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시대가 변한 만큼 연구소가 내세우는 비전도 달라졌다. ‘경제성장 엔진의 재점화’라는 성장 모델을 고수했지만 과거의 ‘정부 주도’ 대신 시장과 정부의 기능을 조화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이번 토론회엔 서강대의 소장학자들도 참여했다.

김원배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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