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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책] 정부의 잇단 '위기 부정' 비판 입막음용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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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금은 경제위기가 아니다'. 최근 경제에 대한 정부 인식이다. 그래서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겠다'고 한다.

이 같은 상황인식과 정책기조에 꽤 많은 사람이 수긍할 것이다. 그러나 비(非)위기.비(非)부양론이 반복해 피력되면서 정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조차 왜 저러나 하고 의심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뜬금없는 '경제위기 아니다'론부터 보자. 그동안 경제가 좋지 않다고 얘기한 논자들은 많았다. '수출은 잘되고 있으나 내수가 너무 좋지 않다' '장래가 불안하고 (규제와 반기업 정서에) 기업가 정신이 억눌려 있어서다''기업하기 힘들다'는 얘기는 한두 사람이 한 게 아니다. 그렇다고 위기라며 당장 나라가 무너질 듯 얘기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부 쪽 사람은 기회만 있으면 '위기가 아니다'는 얘기를 되뇐다. 그러다 보니 경제를 걱정하는 것이 비판을 위한 비판 또는 근거없는 경제위기론을 퍼뜨리는 것처럼 비치게 되었다. 이제는 불경기나 불황 얘기가 정권의 권위에 대한 도전처럼 들릴 정도다.

그래서 경제에 대한 비판 자체를 입막음하기 위해 비위기론을 되풀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반복되는 비경기부양론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민간인사들이 제시한 정책대안은 대부분 '민간기업의 기를 살려줘라' '반(反)시장경제 정서를 해소하라' '규제를 풀어줘라' 등이었다. '경기를 부양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시작부터 무리수라는 비판을 받고 결국 실패하고 말았던 (12.12조치 같은) 경기부양책을 쓰라는 주장은 더더구나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걸 잘 알고 있을 정부인데도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겠다고 강변을 계속한다. 마치 '근거없는 위기론'을 퍼뜨리는 비판세력이 '무책임하게' 경기를 부양하라고 떼쓰고 있는 것처럼. 지금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 정책을 택하기 싫어서 일부러 엉뚱한 경기부양 얘기를 자꾸 하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 때문인지 요즈음 경제를 걱정하거나 경제를 활성화하라는 목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다. 내수위축.가계부채.실업증가 등 좋지 않은 통계나 조사결과가 나와도 음산할 정도로 조용하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경제가 어렵다는 소리를 하면 "위기가 아니니까 경제 걱정 하지 말라는 얘기도 못 들었느냐"며 눈치없다고 핀잔(?)을 듣기 일쑤다.

행여나 이런 걸 두고 민간이 정부 말을 듣고 경제에 대해 안심하고 정책을 미더워하는 것으로 해석할까 두렵다.

김정수 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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