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건강 이야기] 혈압은 낮을수록 좋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3면

인간이 자동차를 타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얼마나 될까. 교통사고나 대기오염 등을 이유로 해마다 2만여명이 자동차로 생명을 잃는다. 40만여명은 불구가 된다. 또 교통사고 피해복구에 10조원이 쓰인다. 오늘날 인류는 일해서 버는 돈의 4분의 1을 도로를 만들거나 자동차를 구입하는 데 쓴다. 자동차를 타기 위해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뜬금 없이 자동차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혈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자동차가 적혈구라면 도로는 혈관에 해당한다. 적혈구는 혈관을 타고 달려가 인체를 구성하는 100조개나 되는 세포 하나하나마다 산소를 전달한다. 심장에서 시작된 혈관을 전부 연결하면 10만km나 된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자동차의 예에서 보듯 인체도 혈관으로 인해 여러가지 부작용에 시달려야 한다. 한국인 3명 중 1명은 혈관질환으로 숨진다. 뇌졸중과 심장병이 대표적 혈관질환이다. 당뇨도 혈관에 생기는 질환으로 봐야 한다. 흔히 당뇨를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의 질환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이는 간접적 원인일 뿐 당뇨로 인한 합병증과 이로 인해 생명을 잃게 되는 직접적 원인은 혈관에 있다. 당뇨를 오래 앓게 되면 심장과 뇌.콩팥.눈의 망막 등 다양한 부위의 혈관에 염증이 생기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췌장이 나빠도 혈관에 염증만 생기지 않으면 당뇨를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혈관을 맑고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혈압을 낮게 유지하는 것이다. 대량 출혈로 혈압이 갑자기 급격하게 떨어지는 경우가 아니면 혈압은 낮을수록 좋다. 저혈압이 고혈압보다 해롭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상식이다. 마치 수압이 센 수도관에서 녹이 잘 생기듯 저혈압일수록 혈관 손상이 줄어들어 무병장수에 도움을 준다. 혈압은 혈압계로 측정해야만 알 수 있을 뿐 증상으론 가늠할 수 없다. 어지럽고 목덜미가 뻐근하면 고혈압이란 속설은 전혀 근거가 없다. 고혈압은 완벽할 정도로 증상이 없다. '침묵의 살인자'란 별명이 붙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축기 혈압이 140㎜Hg, 이완기 혈압이 90㎜Hg 이상인 경우 치료가 필요한 고혈압이다. 그러나 가능하면 수축기 혈압은 120㎜Hg, 이완기 혈압은 80㎜Hg 미만을 유지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골자는 세가지다. 금연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싱겁게 먹으면 된다. 그래도 혈압이 높다면 혈압약을 먹어야 한다. 최근 개발된 혈압약은 부작용이 거의 없으며 뇌졸중과 심장병 등 고혈압이 초래하는 대부분의 질환들을 효과적으로 줄인다. 심지어 혈압약이 당뇨까지 줄인다는 보고도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처방되는 혈압약 중 하나인 디오반의 경우 최근 전 세계 1만5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혈압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당뇨까지 예방하는 효과가 입증돼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매일, 그리고 평생 복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혈압약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이 많다. 그러나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약 복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고혈압에 관한 한 혈압약이 보약이기 때문이다. 혈압을 낮게 유지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강비결은 없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