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기행]호남…'이미 정해진 곳' 3당 유세기피 지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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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3당 후보가 남겨놓은 유세일정의 동선 (動線) 을 따라가다 보면 공통적으로 전부 비껴가는 지역이 호남이다.

한나라당.국민신당은 "가봤자 별 수 없다" 는 무력감으로, 국민회의는 "타지역의 반 (反) DJ정서를 자극할 수 있다" 는 고려로 호남은 이번 대선의 유일한 무풍 (無風) 지대로 남게 된 것이다.

그나마 대선과 함께 치러질 예정이던 광주동구보궐선거에 출마했던 한나라당 김용욱 (金容煜)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에는 단 한표도 주지말자고 하는 투표는 의미가 없다" 며 11일 후보직을 사퇴, 분위기를 더욱 가라 앉혔다 호남에는 그래서 더욱 무거운 침묵이 이어지고 있다.

"나요. 우리는 신경을 안 써부리니까요. " 광주시 양동시장내 완도상회. 대파뭉치를 옮기던 40대후반의 주인은 대선전망을 묻는 질문에 고개를 돌리고 만다.

인근 옥주상회에서 홍어를 파는 朴모 (43) 씨도 "더이상 숨쉴 기력도 없는 판에…" 라며 전혀 관심이 없다는 투다.

그러나 속마음을 열기 시작한 이들은 "아 그래도 여기는 다 같지 않겠어" 라며 DJ지지에 변함이 없음을 확인하고 있다.

오히려 이 지역 유권자들은 "여권이 분열돼 이번에는 된다고 합디다" "대구에서 온 사람들도 이번에는 DJ라고 그럽디다" (고덕환.광주시 택시기사) 라며 '지지도 1위' 를 달리는 김대중후보에 대한 기대가 깊이 잠재돼 있음을 드러내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저쪽에서 밀어줘야 되제" "표를 까봐야 알제" 라며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다.

LG와 해태의 코리안시리즈에서는 '목포의 눈물' 도 부르지 않았고 광주시지부에서는 "저쪽이 잘하면 박수를 치라" 고 당원에 지시를 내렸을 정도였다.

92년 영남지역의 반DJ몰표로 DJ가 패한데 대한 '교훈' 이 오히려 침묵을 택하게 한 요인이라는 점은 쉽게 감지됐다.

이회창.이인제후보에 대한 비난도 듣기가 어려웠고 조순 한나라당총재에게만 '배신자' 라는 성토가 집중되는 분위기였다.

봉선동성당의 조비오신부는 "92년 대선에서 보탬이 되겠다는 열망이 역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같다" 고 이를 요약했다.

전남대 윤성석 (尹聖錫.정외과) 교수는 "92년에는 '김대중당선 = 민주화' 라는 신화가 있어 열광적이었으나 '20억+α' '정계은퇴번복' 등의 약점으로 DJ신화가 꺼진 것도 침묵에 영향을 주고 있다" 고 분석했으나 "대안부재론으로 역시 몰표가 나올 것" 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현 DJ지지도보다 오히려 4, 5%를 더 잡아야 한다" (최병렬 선대위원장) 며 호남에는 전화유세까지 포기했다.

국민신당도 차라리 영남.충청에 전력을 집중키로 했다.

95.9% (광주).92.1% (전남).89.1% (전북) 라는 92년의 DJ득표율에의 도전이 너무 버겁다고 느낀 때문이다.

광주·목포 =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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