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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내 몸엔 한옥 DNA가 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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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김용미 금성종합건축 대표는 “한옥 스타일 아파트를 널리 보급해야 한옥의 세계화도 이뤄진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한옥 모형도를 놓고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옛것은 현대와 어우러져야 제멋 나죠

‘타고난 핏줄’과 달리 프랑스에서 10년간 현대건축을 공부해 프랑스 건축사 자격을 딸 때까지만 해도 그는 한옥을 연구할 의지가 별로 없었다. 그저 옛날 집이라는 것 외엔. 1994년 한국에 돌아와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반 건축가와 똑같이 현대건축을 연구했다.

8년 전 노스님의 말 한마디가 그를 바꿔놓았다. 전남 순천 선암사에 야생차 전시관을 지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김 대표는 현대식 목조건물의 설계도를 만들어갔지만 퇴짜를 맞았다. 스님은 “이곳에 외국인 손님이 많이 옵니다. 그분들이 이곳까지 먼 걸음을 하는 건 한국 고유의 멋을 느끼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김 대표는 전시관을 한옥으로 지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왜 한국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나타낼 새 건축물이 없을까. 한옥의 품격을 고스란히 살린 건축물을 연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때부터였죠.”

한옥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이미 ‘한옥DNA’가 몸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2대가 한옥 목수였던 집안 내력이 기본기를 탄탄하게 만들어준 것 아니냐”고 내세웠다. 덕수궁 목수였던 그의 조부는 일제강점기 때 한옥을 못 짓게 되자 목수 일을 그만뒀다. 김 대표의 부친은 훗날 가업을 이을 생각으로 건축학을 공부했다. 고 김한섭 중앙대 건축학과 교수다. 오빠인 김홍식 명지대 교수(건축과)도 한국 전통 민가 연구의 권위자다. 김 교수는 명지대 건축과 내에 전통건축 전공자 20명을 올해 처음 뽑았다. 집안 내력이 김 대표의 관심을 한옥으로 몰고 간 게 아닐까.

#한옥 아파트 다음 목표는 한옥 세계화

40대 들어 한옥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면서 큰 장애를 만났다. 한옥과 현대건축물을 섞으면 한옥 고유의 품격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굵은 기둥과 둥근 서까래가 한옥의 포인트인데 조금만 얇으면 일본 전통가옥 같은 느낌이 나요. 아직도 고민 중인 사안입니다.” 그는 한옥의 특징은 절제와 여유라고 했다. 방 크기, 천장 높이 등 미묘한 비례가 마음에 안 들어 찢어버린 설계도만 수천 장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는 “기능적으로는 현대식 삶을 한옥에 그대로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성을 높이기 위한 대량 생산도 가능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옛것을 그대로 복원하는 건 복고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며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이 바뀐 만큼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새 주택형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옥의 지붕과 목재 구조만 유지한 채 나머지는 모두 현대화하는 게 아파트 중심의 생활패턴을 유지하면서 한옥의 멋을 살리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같은 크기라도 한옥 스타일의 아파트는 훨씬 넓어 보인다. 한옥은 시각적으로 넓어 보이게 하기 위해 높낮이를 다양화하는 게 특징이다. 한옥만이 가지는 ‘틀어짐의 미학’이란다.

그의 또 다른 목표는 한옥의 세계화다. 한국의 국가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한옥만큼 좋은 아이템이 없다고 그는 강조한다. 김 대표는 “일본의 경우 전통주택에 사는 것을 자랑거리로 여기는 재력가가 많은데 우리는 그렇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서울 한복판에 전통 한옥의 멋을 살린 고급 호텔을 짓는 게 꿈이다. 금성종합건축 직원 90명 중 30명이 한옥 전문가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함종선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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