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나라 운명 지도자가 좌우,이번엔 실수 없이 뽑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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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주리주 출신 무명인사 트루먼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사람들은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떠들었다.

골프를 즐기는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었을 때는 대통령이 없어도 나라가 운영된다는 말들을 했다.

그리고 케네디가 닉슨을 제치고 대통령으로 뽑히자 가톨릭교 신자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트루먼은 밤이면 불필요하게 켜져 있는 백악관 등을 일일이 끄고 다닐 정도의 검소함으로 미국 경제를 일으켰고, 케네디는 프런티어 정신으로 세계의 중심에 자국을 공고히 세워 어쨌든 역사가들은 이들 대통령이 재임기간중 나라를 잘 다스렸다는 평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과연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나라를 잘 이끌었다는 대통령을 서슴지 않고 꼽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97년은 우리 국민에게 매우 우울한 한해다.

설마했던 일들이 하나 둘 표면화하면서 우리가 피땀 흘려 얻은 자신감마저 잃게 된 한심한 나날들이었다.

경제가 나빠져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까지 많은 기업들이 부도를 냈다고 해서, 1천원이 1천원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됐다고 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경제적 위기에 처한 나라를 올바른 길로 이끌려는 지도자나 지도층이 없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나라 살림은 제쳐두고 표몰이에만 정신을 쏟고 있고, 정부는 정부대로 새 대통령이 정해질 때까지 어쩔 수 없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기존정책의 현상유지에만 급급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IMF에서 치욕스런 구제금융을 얻어 위기는 모면했지만 정부는 왜 나라가 이렇게 되도록 놓아두었는지 짜증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한 나라가 잘 되려면 국민이 건전.건실해야 함은 물론 국민을 올바르게 이끌고 나갈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고 쓰여 있다.

그리고 그 지도자는 우리 국민이 뽑게 돼 있다.

만일 그동안 자격이 없는 대통령이 지도자 노릇을 했다면 그 책임은 국민에게도 있는 것이 틀림없겠다.

지금은 다시 원론이 필요한 때다.

함께 힘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진부한 (?

) 말이 너무나 절실히 다가온다.

아직도 우리는 훌륭한 지도자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미련일지라도 이번에야말로 정말 좋은 사람, 정직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라도 말이다.

새해에는 새 대통령과 함께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가입, 국민총생산 (GNP) 1만달러, 세계 11위 교역국 같은 숫자에 매달리지 않고 우리나라를 정말 우리 능력과 분수에 맞도록 알뜰하게 꾸려갈 것을 소원해본다.

더 이상 대통령이 줄줄이 법의 심판을 받는 일도 없고, 대통령의 아들 때문에 온 국민이 분개하는 일도 없이 지도자는 온전한 지도자의 몫을 하고, 국민들은 그 훌륭한 지도자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시절이 오기를 말이다.

김영철 <진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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