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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여유있는 웃음으로 험난한 삶 이겨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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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무슨 운동을 하느냐"고 물으니 "운동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는데 석방운동은 좀 해봤다"고 답했다. 변호사 자격을 잃었던 이야기를 꺼내니 "남들은 한번 되기도 힘든데 두번이나 변호사가 됐으니 행복한 사람 아니냐"며 웃었다.

한승헌(70) 변호사. 동백림 사건, 통일혁명당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문익환.임수경.황석영 방북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의 변론을 맡으며 암울한 시대를 관통했던 인물이다. 1975년과 80년 이른바 '시국사범'으로 구속됐고, 83년까지 약 8년간 군사정권에 의해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해학과 유머에 능한 사람"(박원순 변호사), "실컷 웃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한승헌 변호사를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고은 시인)는 소리를 듣는다. 군사정권에 정면으로 맞섰던 변호사이자 깐깐했던 감사원장(1998~99년)으로 알려져 있지만, 천성은 '근엄'하기보다는 '명랑'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주변의 평가를 입증하려는 듯이 그가 최근 '산민 객담-한승헌 변호사의 유머산책'(범우사)이라는 책을 냈다. '다리' '책과 인생' 등의 잡지와 신문에 실었던, 재미있는 일화나 말을 소개한 글을 추려 엮은 것이다.

그 속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 때 "청와대는 감옥과 같은 곳입니다"라고 말하자 "아닙니다. 감옥은 들어갈 때 기분 나쁘고 나올 때는 기분 좋은 곳인데, 청와대는 그 반대 입니다"라고 답했던 일, 시국사범 재판에서 매번 검찰의 주문대로 형량이 정해지자 "정찰제 재판"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던 일화 등이 담겨 있다.

그는 책의 서문에 '때로는 정담이나 방담이 설교나 웅변보다 정직하고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 험난으로 점철된 내 지난날의 삶 속에서 그나마 해학 마인드(?)라도 작동하고 있었기에 그런대로 여유와 낙관을 유지하면서 이웃과 웃음을 공유할 수 있었다'고 썼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의 소송대리인 중 한명이었던 그는 최근 청와대에 초청받았을 때 "승소에 대한 성공보수를 받아야겠지만, 그것을 국민에게 나눠 줘라"고 뼈있는 농담을 했다고 전했다.

법무법인 '광장'의 고문변호사와 한국외국어대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올 연말께 그동안 자신이 맡았던 시국사건을 역사적 자료로 정리한 책을 낼 계획이다.

글=이상언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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