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IMF지원에 따른 경쟁력약화 요인…분야별 점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 (IMF) 총재는 지난 4일 토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것으로 확신한다" 고 말했다.

투자자금을 회수한 외국인투자가들이나 단기신용을 연장하기를 거부한 은행들도 한국의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에 대해 의심하는 곳은 아직 없다.

다만 누적된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때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한국기업과 산업의 기본체질이 바꾸어지기까지는 IMF처방이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일부에선 오히려 단기적으로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외국인들의 눈엔 한국의 문제가 '일시적인 유동성부족' 이 아니라 '부도 (solvency)' 로 비쳐 있다.

단순한 외환위기라면 멕시코에 대한 처방이 그러했듯이 달러채무의 상환조건을 경감시켜줌으로써 비교적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발단에서 보듯이 한보와 기아처럼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과잉투자는 더 이상 담보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 외국의 금융기관이 단기채무의 연장을 중단한 것이다.

IMF도 사태의 발단을 '올초부터 이어진 사상 유례없는 대기업의 연쇄부도 사태' 에서 찾고 있다.

높은 부도율은 일부 분야에 대한 과도한 투자, 수출가격의 하락과 정부가 재벌 부도를 허용키로 한데 따른 것이다.

근본 이유는 시장경제원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금융기관이 민간기업의 과잉투자계획의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과잉투자 해소에 주안점 더구나 과잉투자가 진행된 철강.조선.반도체.석유화학.자동차등은 대부분 세계적인 공급과잉에 직면해 있고 미국.일본등은 이때문에 실제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IMF가 요구한 이행조건들은 이를 시정하기 위해 크게 네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첫째 거시경제 목표로 조이는 방법이다.

◇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 (GDP) 성장률을 98년에 약 3%로 감속한다 = 투자의욕을 직접 꺾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거시목표 특히 성장률을 낮추는 것이다.

한국 정부와 IMF간 막판까지 조율이 어려웠고 합의문 발표과정에서도 양측의 수치가 달라 의혹을 불러 일으켰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즉시 긴축기조로 전환, 현재 14~16% 수준인 시장금리의 추가상승을 허용한다 = 당장에 마진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다른 부문에서의 비용절감을 통해 만회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

나아가 높은 금리는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는다.

이미 마이너스성장률을 보이는 기업의 투자는 더욱 위축될 것이다.

둘째 부실 투자는 금융기관의 신중한 대출관행과 그것이 실패했을 경우 조기에 시정할 수 있는 감독기능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본다.

따라서 금융산업의 구조조정과 건전성 감독의 강화는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골치거리지만 당장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 부실 금융기관은 구조조정되거나 자본확충이 이루어지고 회생이 불가능할 경우 폐쇄한다 = 금융기관의 폐쇄는 최근 종금사 폐쇄에서 나타났듯이 금융시스템 자체를 마비시켜 멀쩡한 기업까지 도산시키거나 어려움을 겪게 만들고 금융비용을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

또 최고경영진이 미래지향적인 의사결정체제로 복귀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 금융기관은 건전성 기준에 입각해서 위험 평가.대출 심사등을 강화해야 한다 = 기업이 자금을 얻어 쓰기가 어렵게 됐고 이는 곧 신중한 투자결정으로 이어질 것이 틀림없다.

특히 대규모 자본지출을 요하는 위험성 투자는 연기되든지 자취를 감출 것이다.

환차손등 편법처리 不可 셋째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및 회계의 투명성을 높일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는 외국인들이 가장 중시하는 부분. 국제회계기준의 적용과 결합재무제표의 작성은 기존의 지배구조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 독립적인 회계감사가 이루어진다 = 상장기업은 이미 내부감사 및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에 따른 외부감사가 의무화돼 있으나 IMF합의문이 새삼스럽게 적시한 것은 지금까지의 감사가 형식적이었음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한 외국인 분석가는 태일정밀이 부도난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태일정밀은 지난 3년동안 매출과 순이익이 각각 연평균 33%, 28% 증가했고 유보율도 2백% 이상 유지해온 견실한 기업이다.

동시에 '회계기준과 공시에 관한 규정도 국제기준에 따라 강화되면' 지금까지 편법처리하던 유가증권평가손, 환차손등을 1백% 손익계산서에 계상해야 하고 감가상각법도 함부로 바꿀 수 없게 된다.

◇ 기업집단의 결합재무제표 공표를 통해 기업재무제표의 투명성을 제고한다 = 상장기업에 대해 연결재무제표는 이미 의무화돼 있다.

연결재무제표는 투자지분이 30% 이상인 경우에 작성하지만 결합재무제표는 지분이 30% 미만이더라도 지배회사의 영향력이 미치면 연결해야 함을 의미한다.

계열사간의 상호투자 및 매출 등 일체의 거래가 제외되기 때문에 외형 부풀리기가 불가능해진다는 뜻이다.

당장에 재벌들의 몸집이 작아져 대외적인 지명도에 타격이 가해질 전망이다.

◇ 높은 부채비율을 낮추어야 한다 = 설비투자의 상당부분을 부채에 의존해온 한국 기업으로선 부채비율 축소는 곧 투자 축소를 의미한다.

당장에 자기자본 확충이 쉽지 않은 상황이고 보면 부동산의 매각이나 해외자본 참여의 길을 터줘야 한다.

부동산 매물의 적체는 담보대출이 어려워질 것이고 장부가격을 중시하는 기업분석 관행에 쐐기를 박을 것으로 보인다.

◇ 외국인의 주식투자한도를 98년말까지 55%로 확대한다 = 외국인지분의 확대 허용을 경영권 박탈이라는 측면보다 소수주주권 행사를 통한 발언권 강화라는 측면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템플턴 (홍콩) 의 올드크롭프트 마케팅담당이사는 "실제 경영권장악에 관심을 가진 외국인기관투자가는 거의 없다" 고 말한다.

그러나 경영의사결정에 대한 외국인투자가들의 견제가 빈번해질 가능성이 크다.

株主權 단독행사도 가능 지난 4월 개정된 증권거래법은 소수주주권을 강화하기 위해 '위법행위를 한 이사.감사의 해임청구권' 은 발행주식수의 1% (개정전 5%) , 회계장부열람권' 은 3% (개정전 10%) 로 지주 (持株) 요건을 대폭 낮췄다.

IMF협정 이전까지는 외국인의 개인한도가 7%여서 소수주주권의 단독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했으나 1인 한도가 50% 이상으로 확대되면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무역자유화를 통해 상품시장을 압박할 것이다.

◇ 국제무역기구 (WTO) 양허계획에 맞추어 수입승인제 및 수입다변화 제도를 폐지할 일정을 수립한다 = 외국상품의 범람은 내수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짐을 의미한다.

따라서 환율상승으로 인한 수입원자재 가격상승을 판매가격으로 전가시킬 수 없어 마진은 축소될 수 밖에 없어 수익성이 더욱 압박받을 전망이다.

권성철 전문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