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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유래]경기도 김포…신·임금 뜻하는 한자에서 유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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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경기도김포 (金浦) 는 그 땅의 앉음새로 인해 삼국시대이래 이곳을 차지한 쪽이 이 나라 주세력에 오를 만큼 요충지다.

지금은 상당부분이 서울과 인천소속으로 떨어져 나갔지만 조선때만해도 한강너머부터 강화에 이르기까지의 너른 지역을 포괄하는 지명이었다.

'김포' 란 지명의 유래는 '부족장이 다스리는 바닷가 고을' 이란 의미로 신 (神) 이나 존장 (尊長) , 왕을 뜻하는 '' 에 포 (浦) 자를 합친 것이란게 정설이다.

이는 역사적 지명변천, 고고학적 발견등으로 미뤄 설득력이 높다.

91년 통진면가현리에서 기원전 2천여년전의 탄화미 (炭化米) 와 갈돌등이 발견돼 김포일대에서 신석기때부터 벼농사를 지으며 정착생활을 하는 세력이 살고 있었음이 입증됐다.

검포 (黔浦).검단 (黔丹) 등의 지명도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언어적 흔적들이다.

김포는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 땅이었다가 장수왕의 남하정책에 따라 475년 고구려의 차지가 됐다.

고구려때 이곳은 검포현 (黔浦縣 : 지금의 김포읍.고촌면.검단면지역) , 수이홀현 (首爾忽縣 : 양촌.대곶면지역) , 평회압현 (平淮押縣 : 통진.월곶면지역) , 동자홀현 (童子忽縣 : 하성면지역) , 제차파의현 (齊次巴依縣 : 옛 양동.양서면지역으로 지금의 서울강서구가양동일대) 등 5개현으로 나뉘어 있었다.

지금의 '김포' 란 지명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신라 경덕왕 16년 통일된 전국을 9주5경 1백21군 2백90현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다.

당시 김포지역을 장제군 (長堤郡) 소속으로 하면서 검포현을 김포현으로 바꾼 것이다.

조선초 경기도속현이었다가 1632년 인조가 자신의 부모 묘인 고현내면 흥경원 (興慶園) 을 장릉 (章陵) 으로 승격시키면서 김포도 군 (郡) 으로 올려 8개면을 관할케 했다.

원래 흥경원은 양주군군장리에 있었던 것으로 반정으로 임금에 오른 인조가 즉위 5년에 고현내면 북성산 남쪽으로 천장 (遷葬) 했었다.

당시는 그해 정월 정묘호란이 막 끝난 직후로 천장을 하려하자 홍문관에서는 상소문을 올려 "민심이 수습되지 않은 터에 시기적으로 부당하다" 고 상소한데 이어 같은해 7월 다시 "경제가 어렵다" 는 이유를 들어 "물자를 아껴쓰라" 고 진언하기도 했다.

고종32년 (1895) 칙령으로 인천부에 속했다가 이듬해 13도로 개편하면서 다시 경기도에 속하게 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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