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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등 자성 한목소리…'국가경영' 세미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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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IMF협상이 타결된 다음날인 4일, 때마침 21세기 국가경영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 모임이 있었다.

한국공공정책연구소 (소장 성경륭 한림대교수)가 중앙일보 후원으로 숭실대에서 개최한 '21세기의 변화전망과 국가경영의 신패러다임' 이란 주제의 세미나가 바로 그것이다.

40대 중반의 중견학자 50여명이 참여해 지난 여름부터 준비해온 학술행사다.

막상 이날 회의에 참가한 학자들의 얼굴에는 허탈감과 분노가 서려있었다.

어떤 학자는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도 했다.

이 자리에서 토론의 불을 당긴 것은 김진현 서울시립대 총장의 기조강연.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이 나라 경제학자들이 '역사적 범죄' 를 저지르고 있다고 질타했다.

오늘의 위기에 대해 준비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아직도 GNP중심의 발전주의적 발상에 젖어 막연한 기대만을 전파하고 있다는 것. 이어 진실로 국민의 고통을 아파하는 진지한 고민을 찾기 어려운 사회과학자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자탄했다.

그는 결국 창조적 사람과 환경을 만드는 대학교육의 근본 시스템의 변화가 관건일 수밖에 없다면서 '자신에 대해 너무 불성실한 대학분위기' 에 대해서도 자성했다.

한 토론자는 이 나라의 위기원인과 처방이 분명하지 않은데 대해 개탄했다.

홍콩이나 미국의 연구소에서 더 설득력있는 진단이 이뤄진 반면 그 많은 우리 연구소들이 무엇하나 제대로 제시하고 있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IMF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들중 우리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분석들이 많았다는 점에 기가 막히다고 했다.

한편 이날 국가경영의 개혁과제는 9편의 논문으로 설정됐다.

박재완 교수 (성균관대.행정학) 는 개발독제시대의 정부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며 "정부기능의 시장성 테스트를 도입, 그 입증 책임을 정부기관에 부여할 것" 을 주장하고 사업부서의 독립채산제, 사업부서장의 공개채용등 개방형 임용제, 행정고시 폐지등을 제안했다.

임혁백 교수 (이대.정치학) 는 단기적으로 헌정주의 정착, 장기적으로는 대표성과 통치성을 효과적으로 결합한 통치체제로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혼합정을 주장하기도 했다.

송호근 교수 (서울대.사회학) 는 사회 전체가 개인화.유동화되는 가운데 나타나는 새로운 갈등요인을 치유하기 위한 도덕적 복지공동체를 제안했다.

또▶고비용저효율의 국토개발 (김성배.숭실대.행정학) ▶교육투자의 비효율성 (최충옥.경기대.교육학) ▶세계화 본질에 대한 인식결여 (김영수.KDI)에 대한 비판이 있었으며, 특히 서중해 박사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 는 일본보다는 낮지만 미국.독일.프랑스.영국보다 높을 뿐 아니라 대만의 2배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하는 한국이 대만의 절반밖에 산출하지 못하는 개발체제의 비효율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개혁안들이 단기적 처방으로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대증적 처방" 이라며 사회 전체의 비효율성 구조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토론의 일반적 인식이었다.

하지만 사회 전체 구조개혁을 가능케 할 조건을 찾는데는 모두 곤혹스러워했다.

정부.정치권.경제권, 심지어 교육계의 개혁을 통해 실마리를 찾는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위기의 정도가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 결국 이영조 교수 (경희대.국제관계학) 는 정부 이외에 제3의 사회부분의 역할을 기대했고, 시민들의 '결사체 민주주의' (임혁백) 나 '시민교육' (송호근) 등을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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