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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스타일]홍대앞 록월드서 레스비언 파티…“사랑이 무슨 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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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11월의 마지막 날 오후 6시. 초겨울 스산함을 잠재울 듯한 기세로 홍대 앞 록월드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입구엔 반짝이는 배지와 노란 별 스티커로 치장한 ‘웨이터’들. 상당수 입장객의 뺨에도 빨갛고 파란 별이 하나씩 붙는다. 어느덧 1백50명. 절대 다수가 여자다. 그러나 그것 뿐,겉으로 봐서는 무슨 모임인지 짐작하기 힘들다. 뭘까. 행사는 레스비언 독립잡지‘니아까’주최 ‘제1회 레스비언 나이트쇼’. 댄스·게임등을 통해 마음에 드는 상대를 찾는 파티다. 이성애자에 비해 만남의 기회가 제한되어 있는 레스비언들을 위한 만남의 장인 셈이다. 사회자는 물론 웨이터·DJ 모두 레스비언이다. 얼굴에 별을 붙인 이들은 부푼 기대를 안고 온 짝없는 ‘싱글’들. 입장요건은 그리 깐깐하지 않다. 레스비언은 1순위. 이성애자·양성애자 등등 레스비언 나이트쇼에 무리가 없는 여자. 위의 사람을 동반한 남자. 단 남자끼리는 사절이다. 레스비언을 소재로한 단편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미유키’로 오프닝. 해외 레스비언 광고 모음도 상영하고 ‘니아까’제작과정 및 스태프 소개 비디오도 보여준다. 아직은 서먹서먹한 분위기다. 하지만 무대에서 그룹‘치우’가 금속성 음악을 쏟아내면서 조금씩 달아 오른다. 댄스타임이 이어진다. 서로에 대한 탐색에 열중하고 있는 탓일까. 무대는 여전히 한가롭다. 그나마 느린 음악이 흘러나오면 여느 디스코테크처럼 우르르 자리로 돌아가기 바쁘다. 그러나 주위의 탄성을 들으며 진하게 블루스를 추는 몇쌍의 커플들. 주위의 시선과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날 이곳의 의미를 만끽하고 있는 거다. 무드가 잡히면서 대담한 애정표현을 하는 이들도 눈에 띈다. 표정과 동작은 너무 진지하다. 이성애자가 보기엔 다소 충격적이다. 아니 애틋하다고 해야 하나. 이 즈음 짝없는 이들은 더 깊은 외로움에 빠져드는지. 기필코 멋진 상대를 찾고야 말겠다는 전의가 흐르는 것 같다. 짝찾기 방법은 이성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중 하나는 웨이터를 통해 맘에 드는 여자에게 맥주 한병을 보내는 것. 상대가 병을 따면 연결이 되고 되돌려 보내면 딱지를 맞는 것이다. 후자의 ‘쪽팔림’때문인지 웨이터를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른 하나는 부킹게임. 간단한 자기 소개와 자신의 이상형을 쪽지에 적어내면 추첨을 해서 해당되는 사람이 나오고 그가 마음에 들 경우 자신있게 나서는 방식이다. 드디어 몇몇 프로필들이 읽힌다. 자신을 완벽한 여자라고 소개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24세의 페미니스트 레스비언이라는 한 여성은 앞으로 나와 “제가 마음에 안드세요”라며 적극적인 자세다. 그런가 하면 멋진 춤솜씨로 구애에 나선 여성까지도 등장. ‘노예팅’까지 벌어지는 것을 보면 정말 급한가 보다. 팔리고 싶은 사람이 나와 온갖 재주를 선보이면 경매로 높은 값을 부른 사람과 짝이 되는 것.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만드는가. 겨울 추위를 대비하는 모든 싱글들의 소망?아니 같은 레스비언이니 덜 부담스럽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동성애자 소식지에 실린 한 동성애자의 말을 옮긴다면. “지구가 3백65일만에 태양을 도는지 알 수 없듯 당신은 동성애·양성애·이성애등의 다양한 취향을 알지 못한다. 아는 것은 단 하나. 우리는 나약하고 미완성인, 서로를 사랑하고 도와가며 살아야 하는 친구란 점 뿐이다.”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있던 10대 후반의 학생 박모양과 이모양의 이야기. 박양은 싱글이고 이양은 애인이 있단다.

"솔직히 레스비언들은 맘 편히 갈 데가 없어요. 연인들은 더 그렇고. 오늘은 그냥 놀러 왔어요. 일단 편하잖아요. 모인 사람 모두 같은 이반 (동성애자를 뜻하는 말) 이니까. " 짝을 찾은 싱글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남녀든 여녀 (女女) 든 짝찾기가 그렇게 쉬울려고. 그러나 모인 사람들 모두 즐거워 보인다.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서일까. 그동안 꼭꼭 숨어있던 많은 레스비언들을 만난 반가움 때문일까. 하지만 파티가 끝나면 이들은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처럼 다시금 이성애자의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퀴어영화제가 불허되고 동성애를 암시한 듯한 모 여성듀오의 앨범자켓이 한때 판금되기도 한,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정신병자 취급당하기 십상인 현실 속으로…. 그래서일까. 이들의 축제가 문득 슬프게 다가서고 만다.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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