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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깃발’ 대신 ‘계파 깃발’만 나부끼는 재·보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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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전주 덕진
종이 박스 깔고 앉아서 3시간 사인해 준 정동영

11일 전주 덕진. 무소속 예비 후보로 유권자들과 만남을 시작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가는 곳마다 한 걸음을 떼기 어려웠다. 몰려드는 어린이들과 여성들의 사인 요청과 사진 촬영 부탁 때문이다. 이날 전주시민 1만여 명이 운집한 글짓기 대회장에선 3시간 넘게 종이 박스를 깔고 앉아 사인을 했다. 유권자들에게 악수를 건넬 땐 말없이 시선을 교환하거나 “도와 달라”는 말 정도였다. 첫날 행보를 마친 뒤 정 전 장관은 “격려를 많이 해주시니 기분은 좋지만 주민들의 삶이 너무 팍팍하고 어려워져 안타깝다”며 “역시 정치의 기본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공천을 받은 김근식 경남대 교수나 당 지도부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본격적인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11일 전주시 팔복동 휴비스에서 열린 그림대회 행사장에서 정 전 장관이 어린이들에게 사인을 해 주고 있다. [전주=연합뉴스]

‘정치적 모태인 전주에서 다시 시작하게 도와 달라’는 정 전 장관의 선거 전략은 12일까진 주효하고 있는 듯했다. 동정론이 번지는 분위기다. 덕진구 금암동에 사는 자영업자 박모(51)씨는 “처음에는 오히려 정 전 장관이 잘못하는 것 같다는 말이 많았지만 탈당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말했다. 송천동 주민 정모(42)씨도 “당내 알력 때문에 밀려난 정동영에게 남은 게 뭐가 있느냐”며 “고향에서부터라도 다시 기반을 다져 나가야 한다”고 정 후보를 옹호했다.

정 전 장관에 비하면 김 교수는 걸음마 단계다. 지난 10일에야 다른 예비 후보가 쓰던 사무실을 넘겨받아 사무집기 정리를 갓 끝냈다. 덕진에서 초·중·고를 졸업했다지만 주민들 사이에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김 후보는 12일 “유권자들에게 민주당의 과거와 미래 중 어떤 쪽을 선택할 것인지 묻고 싶다”며 “정 전 장관이 당의 초미의 과제인 반이명박 전선을 흐트러뜨리고 당의 결정에 불복해 민주세력의 분열을 야기한 점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후보가 기대를 거는 건 아직 불씨가 살아 있는 정 전 장관에 대한 비판 여론이다. 택시기사 김승환(57)씨는 “대선·총선에 떨어진 뒤 전주 출마라면, 이번에도 떨어지면 시장·군수 선거도 나올 거냐”며 “그러니까 호남에서 한나라당 지지자가 느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진안군수를 세 번 지낸 임수진 전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의 무소속 출마 여부는 마지막 변수다. 20만여 명의 덕진 유권자 중 6만여 명이 용담댐 건설 등으로 이주한 진안 출신이어서 재선거의 낮은 투표율을 감안하면 승산이 있다는 게 그의 계산이다.

전주=임장혁 기자

인천 부평을
이곳만 이기면 ‘면피’ 한다 … 여야 총력전

부평을은 이번 국회의원 재선거 5곳 가운데 유일한 수도권 선거구다. 지역 정서가 엷은 수도권의 선거는 민심의 바로미터로 통한다. 여든 야든 다른 곳에서 다 져도 부평을만 이기면 ‘면피’는 하는 셈이다. 그런 만큼 양측 모두 총력전이다.

공천에 고심하던 한나라당은 이재훈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후보로 결정했다. 지역의 최대 현안이 GM대우 문제임을 감안해 경제관료 출신을 맞춤형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 후보의 슬로건은 ‘부평경제·GM대우 확실히 살리겠습니다’로 정했다. 한나라당은 15일 이 후보 선거 사무소 개소식에 맞춰 당 최고위원회의를 부평에서 개최하며 거당적으로 분위기를 띄워줄 계획이다. 당 차원에서 GM대우 지원 방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이 후보 측은 “15대 총선 이래 부평을에선 계속 여당 후보가 승리했다”며 “힘있는 여당 후보가 당선돼야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게 이곳 민심”이라고 말했다. 다만 투표일까지 인지도를 어느 정도 끌어올리느냐가 관건이다.

노동운동가 출신인 민주당 홍영표 후보도 GM대우와는 1985년 대우차 파업 시 노 측 대표를 맡았던 인연이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총리실 비서관과 재경부 FTA 국내본부장을 지냈던 그는 ‘1년 만에 경제파탄, 2번엔 서민경제’란 슬로건으로 바닥 민심을 공략하고 있다. 10일 정세균 대표가 부평을 방문해 “4월 국회에서 대우회생특별법을 제출하겠다”며 약속하기도 했다. 홍 후보는 지난해 총선에 출마한 경험이 있어 조직력·인지도에선 강점이 있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에 비해 크게 처지는 당 지지율은 막판까지 홍 후보의 고민거리가 될 전망이다.

김정하 기자

울산 북
진보신당 · 민노당, 후보 단일화 성사될까

울산 북의 최대 변수는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 후보 단일화를 이루느냐다. 지역구에 현대자동차와 협력업체 직원이 많아 민주노총의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조승수 진보신당 후보와 김창현 민노당 후보는 지난 6일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지만 아직 투표와 여론조사를 실시하지 못한 상태다. 민주노총 조합원 투표 결과를 반영하는 후보 결정방식을 두고 울산 북 선거관리위원회와 중앙선관위의 해석이 엇갈리면서 일정이 늦춰졌다. 조승수 후보 측은 “12일 아침에도 두 후보가 회동을 해 세부 일정을 협의했다”며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후보를 단일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후보자 등록 기간(14~15일) 이전에 단일화를 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한나라당 박대동 후보도 ‘현대차 민심’ 잡기에 사활을 걸었다. 예금보험공사 사장을 지낸 박 후보는 ‘자동차 산업을 살릴 경제전문가’ 이미지를 내세웠다. 옆 동네 울산 동구에서 내리 5선을 한 정몽준 최고위원의 지원도 박 후보에겐 큰 힘이다. 한나라당은 아예 정 최고위원이 울산 북 선거를 전담 지원하도록 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단일화가 실패할 경우 박 후보가 어부지리를 챙길 수 있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후보들의 움직임도 변수다. 이광우 전 한나라당 중앙당 지도위원은 ‘친박 무소속’으로 출마할 예정이다. 이 후보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박근혜 전 대표와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다.

김수헌 전 한나라당 울산시당 부위원장과 친박 무소속 후보 단일화를 추진했으나 잠정 결렬된 상태다.

선승혜 기자

경주
친이 vs 친박 … 누가 이기든 당내 후유증 커

정종복과 정수성.

4·29 경주 재선거에서 맞붙는 두 사람은 이미 ‘개인’이 아니다. 친이·친박이란 여권의 양대 진영이 뒤에 있다. 재도전 기회를 얻은 한나라당 정종복 후보는 친이계다. 지난해 총선 때 ‘박풍(박근혜 지지 바람)’ 와중에 낙선했었다. 그는 근래 ‘낮은 자세’다. 친박 정서가 강한 민심을 감안한 듯하다. 홍준표 원내대표가 지원하겠다고 했으나 “스스로 해보겠다”고 한 일도 있다.

육군대장 출신인 무소속 정수성 후보는 친박계다. 2007년 경선 때 박근혜 전 대표의 안보특보를 지냈다. 그의 선거 전략은 ‘박근혜 마케팅’이다. 그는 “박 전 대표에게 충성하겠다”고 말한다.

대리전 성격이 드러난 일도 있다. 정수성 후보는 이달 초 “이상득 의원이 사퇴 압력을 행사했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했다. 박 전 대표는 “정치의 수치”라고 했고, 이 의원은 “그렇게 약삭빠르게 정치를 해오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후 갈등이 겉으로 노골화되진 않았다. 친이·친박 대결로 가면 오히려 불리할 것이란 친이 진영의 판단과 무소속 후보를 지원하는 듯 보여선 안 된다는 친박 진영의 고심이 맞물린 결과다. 하지만 내부적으론 으르렁댄다. 누가 이기든 어느 한쪽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치열한 싸움이다 보니 판세가 여러 차례 출렁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전문가가 많다. 이번에 의원 배지를 뗀 김일윤 전 의원의 부인 이순자 경주대 총장직무대행의 출마와 그 여파, 자유선진당 이채관 후보의 선전 여부도 변수다.

고정애 기자

전주 완산갑
경선 승복한 한광옥 “명예 위해 결과 수용”

 민주당이 경선을 통해 4·29 전주 완산갑 재선거 후보로 이광철 전 의원을 낙점했다. 민주당은 11일 선거인단 1005명 중 630명이 참여한 현장 경선과 여론조사 득표율을 합산한 결과 이 전 의원이 41.2%를 얻었다고 발표했다. 옛 동교동계 인사 등의 집중적 지원을 받는 등 유력 후보로 꼽히던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는 27.3%, 3위 김광삼 후보는 19.8%, 4위 김대곤 후보는 11.8%였다. 이에 따라 이 전 의원은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오홍근 전 국정홍보처장, 김대식 전 전북도교육위 의장, 김형욱 전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이재영 전 SK텔레시스 고문, 김형근 전 임실관촌중 교사 등과 경쟁을 벌이게 됐다.

한광옥 전 대표는 12일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많은 지인으로부터 경선 불참 권유를 받았었다”며 “그러나 당 대표를 지냈고, 국민경선제를 정치사에 처음 도입한 장본인으로서 유·불리를 따져 경선에 불참하는 것은 30여 년 정치 생활 동안 정도를 걸어 온 ‘한광옥답지 않은 행동’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명분 없는 경선 불참은 국회의원직보다 더 소중한 내 자신의 명예를 잃는 행동이라 생각해 경선 결과를 받아들인다” 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에 대해 “당과 잠정적으로 결별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무소속 연대 가능성에 대해서도 “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인접한 전주 덕진의 정동영 전 장관의 움직임에 따라 무소속 돌풍이 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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